간호인 처우 개선, 지금이 골든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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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인 처우 개선, 지금이 골든타임
  • 박형재 기자 parkhyungjae@kongje.or.kr
  • 승인 2020.11.10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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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 장기화로 의료진 피로도 누적, 울분‧스트레스 등 ‘번아웃’ 심각
과도한 업무 부담에 간호사 이탈 가속화, 이러다 방역전선 뚫릴 가능성↑
‘간호인공제회’ 설립해 적절한 보상 및 안전망 구축, 법률상담 등 지원해야

[한국공제신문=박형재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간호사들의 피로도가 누적되고 있다. 방역 현장에서 진단검사, 역학조사, 환자 치료를 반복하며 육체는 물론 심리적 번아웃(Burnout·탈진)을 호소하는 것. 대체인력 확충이 시급하지만 열악한 근무 환경에 일선 간호사조차 병원을 떠나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국가 차원에서 ‘간호인력 양성 및 처우개선법’을 제정하고, 간호인공제회 설립 등으로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의료진 업무 과중, 번아웃 우려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함께 일하는 의료진들이 번아웃으로 힘들어하고 있다. 이 상황이 금방 끝날 것 같지 않은데 장기전을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

코로나19 선별진료소에서 일하는 한 의사가 자신의 페이스북에 적은 내용이다. n차 감염이 지속되면서 의료인력이 소모되는 상황에 우려를 나타낸 것이다.

다른 간호사는 “의료진들의 피로도와 상시대응체계를 뒷받침해줄 여러 조치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말했다. 결국 코로나를 중장기전으로 보고 이에 따른 의료인력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다.

코로나 사태는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백신이 개발되고 보급되려면 2년 이상 걸린다는 게 중론이다. 미국 미네소타대 감염병 연구센터는 코로나가 2년간 지속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런 가운데 방역 최일선에 있는 의료진의 피로도가 누적돼 집중력이 떨어지면 진료 과정에서 실수하거나 감염될 우려가 커진다. 자칫 방역전선에 구멍이 날 수도 있다. 의료진 확보 및 관리에 만전을 기해야 하는 이유다.

실제로 코로나19에 대응하는 의료진들은 심각한 스트레스와 피로감을 호소하고 있다. 유명순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팀이 지난 8월 코로나19 담당인력 621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의료진‧역학조사관의 1/3은 번아웃을 호소했고, 부당한 업무 배정이나 민원 등으로 울분을 경험했다는 비율도 70%에 육박했다.

유명순 교수는 “의료진의 고강도 업무 지속이 번아웃, 스트레스 등 건강 악영향으로 이어지는 만큼 그에 대한 대안을 늦출 상황이 아니다”라며 “의료인력의 울분 경험을 낮추기 위한 투명하고 공정한 업무 분배와 처우 기준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다른 조사에서도 의료진의 어려움이 여실히 드러난다.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에 따르면, 코로나 첫 환자가 발생한 1월 20일부터 9월 29일까지 9개월간 의료진 159명이 코로나에 감염됐다. 이 중 간호사가 101명으로 가장 많았고, 간호조무사 33명, 의사 10명, 치과의사 1명, 기타(방사선사, 물리치료사 등) 14명 순이었다.

특히 확진자 병동에서 환자를 돌보다가 감염된 의료진은 대부분 간호사였다. 간호사들은 보호장비를 입고 오랜 시간 환자 곁에서 일하기 때문에 업무강도가 높고 과로에 지치기도 쉽다. 그런데도 4시간씩 코로나 병동 근무를 요구하는 병원이 많아 안전을 위협받고 있다. 이를 견디다 못해 이직이나 퇴사를 선택하는 인원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서울의 한 간호사는 “방호복을 오래 입고 있으면 두통이나 어지럼증에 시달린다”며 “화장실에 자주 갈 수도 없어 식사나 음료 섭취조차 꺼리는 실정”이라고 했다.

의료인력 코로나 확진 현황 (9월29일 기준)
의료인력 코로나 확진 현황 (9월29일 기준)

간호사 일주일에 3명 ‘코로나 감염’

코로나 대응에서 가장 필수적인 인력은 간호사들이다. 진료시간에만 환자를 만나는 의사들과 달리 24시간 환자를 돌보기 때문이다.

특히 코로나 병동은 격리가 필수적인 감염병 환자의 특성상 간병인, 청소노동자, 환자식당노동자 등의 업무를 간호사들이 도맡아 업무 강도가 높다. 감염병 예방을 위해 입는 레벨D 방호복은 통풍과 땀 흡수가 안돼 찜통 더위를 견뎌야 한다.

문제는 간호사들의 처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간호사들은 국민들에게 코로나19의 영웅, 백의의 천사 등으로 불리지만 현실은 최저임금 노동자에 가깝다. 3교대, 야간근무, 태움·성폭력 등 인권침해, 눈치보이는 휴가 사용 등 과중한 업무 부담과 그에 반해 낮은 임금에 시름하고 있다.

열악한 근무환경의 대표적인 사례가 ‘임신순번제’와 ‘태움’ 문화다. 임신순번제는 간호사들이 임신의 순서를 돌아가며 정하는 것이고, 태움은 위계질서를 강조하는 직장내 괴롭힘을 말한다. 그런데 이러한 관행은 간호사 인력부족 문제와 밀접하게 연결돼있다. 적은 인원으로 많은 업무를 처리하다보니 모두가 한명 이상의 몫을 담당하며, 휴가 등 업무공백이 양해되기 어려운 분위기다.

우리나라 간호인력 부족 문제는 어제오늘일이 아니다. 연구공동체 ‘건강과대안’의 <한국의 간호인력 문제 해결을 위한 대안 모색> 보고서에 따르면, 2017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활동 간호인력은 한국 6.9명, OECD 평균 8.8명으로 조사됐다. 그러나 이는 간호사와 조무사를 모두 포함한 수치로, 인구당 간호사 수로만 따지면 OECD 평균의 2분의 1 이하다. 2016년 기준 인구 1000명당 한국의 활동 간호사 수는 3.5명에 불과해 OECD 평균 7.2명을 크게 밑돌았다.

또한 한국의 병원은 수익성을 위해 상대적으로 많은 병상을 운영 중이다. 2017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병상 수는 12.3개로 OECD 평균 4.7개의 2.6배다. 이를 감안한 병상당 활동간호사 수는 OECD 평균의 18.6%로 평균 5배 이상의 고강도 노동에 시달리는 셈이다.

OECD 평균 대비 한국 간호인력 현황.
OECD 평균 대비 한국 간호인력 현황.

게다가 간호사들의 역할과 책임 범위가 점점 넓어지면서 의사들처럼 배상책임을 지는 경우가 늘고 있다. 법적 근거없이 전공의의 역할을 대체하는 PA간호사((Physician Assistant) 제도가 대표적이다.

병원에는 수술전담간호사 혹은 전문간호사로 불리는 PA간호사가 있다. 각 병원들은 필요에 따라 간호사, 응급구조사, 간호조무사 중에서 PA를 차출한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전문의 진료보조지만 환부 봉합, 드레싱, 초음파, 방사선 촬영, 진단서·진료기록지 작성은 물론 수술·시술 등 사실상 전공의 역할을 대체하기도 한다.

PA는 미국, 영국, 캐나다 등에서는 합법이지만, 국내 의료법상 근거가 없는 불법이다. 그러나 의사 부족을 핑계로 매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592명이던 국립대병원 PA는 지난해 64%(380명) 증가한 972명에 달했다. 전국에 1만여명이 활동 중으로 추산된다.

만일 간호사들이 의료 사고를 내면 난감한 상황에 처한다. 의사들은 대한의사협회가 운영하는 의료배상공제조합 등을 통해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고 있지만, 간호사의 경우 배상책임보험 가입률과 보장 범위가 낮아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대한간호협회가 2019년에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96.4%가 간호사를 위한 배상책임보험이 필요하다고 응답했고, 87.4%는 적절한 제도가 마련되면 가입 의사가 있다고 했다.

간호사 이직률 15.4%, 인력이탈 가속화 

이처럼 인력부족에 따른 업무과중과 피로도 누적, 업무범위 확대와 배상책임 증가 등으로 간호사들의 이탈이 가속화되고 있다. 간호사는 이직 및 퇴직률이 가장 높은 직업으로 손꼽힌다.

병원간호사회가 발표한 ‘병원간호인력 배치현황 실태조사’를 보면, 한국 간호사의 이직률은 2019년에 15.4%, 신규 간호사 이직률은 45.5%나 됐다. 간호사 평균 근속연수는 7년 7개월에 불과했다. 신규 간호사 중 절반이 1년 안에 이직하며, 베테랑 간호사조차 8년을 버티지 못하고 업계를 떠나는 것이다.

결국 병원마다 수익성을 위해 간호사를 필수 정원보다 적게 뽑고, 이들에게 과중한 업무를 맡기며,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부족한 것이 높은 이직률의 원인이므로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

이상윤 건강과대안 책임연구원(전문의)은 “기본적으로 노동량이 너무 많고, 업무강도가 강하고, 그에 비해 휴식과 휴가가 너무 적은게 문제”라며 “그렇다고 환자 수를 줄일 순 없으니, 간호사 수를 늘리는 수밖에 없다. 정부에서 ‘간호사 인권법 제정’ 등으로 최소한의 간호인력 하한선을 정해 병원에 강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민단체에서 추진 중인 '간호사 인권법' 내용 중 일부. 간호사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정부에서 간호인력 하한선을 정하도록 했다.
시민단체에서 추진 중인 '간호사 인권법' 내용 중 일부. 간호사 인력난 해소를 위해 정부에서 간호인력 하한선을 정하도록 했다.

간호사의 노동환경 개선을 위한 노력이 없었던 건 아니다. 보건복지부는 2018년 ‘간호사 근무환경 및 처우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2022년까지 신규간호사 10만명을 확대해 업무부담을 완화하고, 태움·성폭력 등 인권침해 행위 시 면허정지 등의 처분 근거규정을 마련한 것이다.

그러나 간호 관련 졸업자는 인구 10만명당 한국 99.9명, OECD 평균 43.6명으로 적지 않다. 결국 활동 간호사수 부족이 문제이며, 이러한 원인이 되는 열악한 노동환경 개선이 관건이다.

오선영 민주노총 보건의료노조 정책국장은 “감염병에 대응하려면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하고, 질병 종식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기 때문에 인력 순환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여력이 없는게 문제”라며 “간호인 처우 개선과 위험 보상에 대한 시스템을 체계화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간호인 처우개선법 제정 필요

전문가들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간호인력 확보 및 처우개선법’을 통과시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정부 차원에서 간호인력의 근로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해 필요한 사항을 법으로 규정함으로써, 권익을 보호하고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 품질 향상에 도움을 줘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영국은 코로나19로 피로가 누적된 의료인력 보호를 위해 ‘2020 코로나바이러스법’을 제정해 시행하고 있다.

이 법안은 감염병 확산에 따른 필수인력을 확충하기 위해 보건의료·사회복지 인력을 증원할 수 있도록 했다. 최근 은퇴한 전문가, 훈련이 끝나가는 학생 등을 포함해 간호사, 구급대원 등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보건의료 인력으로 비상등록할 수 있고, 긴급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기 위해 무급휴가를 받을 수 있다. 또한, 수입·비용에 대한 손실을 보상받으며, 코로나19 대응 중 발생하는 의료과실에 대한 면책을 제공한다.

우리나라도 간호사 부담을 덜어줄 구체적인 법안이 이미 만들어져 있다. 김승희 전 미래통합당 의원이 2018년 입법발의한 ‘간호 인력의 양성 및 처우개선에 관한 법률안’이 그것이다.

법률안에는 △간호인력 양성 및 처우개선 종합대책 수립 △간호인력지원정책심의위원회 구성 △간호인력 표준 보수지급 기준 마련 △간호인력 공제회 설립 등의 내용이 명시됐다.

특히 보건복지부 장관은 간호인력이 적정 임금을 받을 수 있도록 ‘간호인력 표준 보수지급 기준’을 마련하고 보건의료기관은 이를 준수하며, 간호인력의 생활 안정과 복지 증진을 위해 ‘한국간호인력공제회’를 설립할 수 있도록 했다.

이 법률안은 “간호 인력 대란이 발생한 원인은 간호 인력에 대한 급격한 수요 증가 때문이지만, 열악한 근무 환경과 낮은 보수 수준 등으로 인해 근속연수가 짧고 높은 이직률을 보이는 점, 경력 단절 후 업무 복귀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점 등도 원인 중 하나”라며 “간호 인력의 양성 및 처우개선을 위한 다양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 법안은 20대 국회 마감으로 자동 폐기됐다.

공제회 설립해 간호인 보호해야

간호인공제회가 설립되면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간호사를 회원으로 하는 공제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배상책임보험을 수요자의 니즈(needs)에 맞게 설계할 수 있다. 현재 손해보험사의 전문인배상책임보험이 있지만, 보험료가 비싸고 보장범위도 제한적인 한계가 있다.

공제에서는 보험료도 탄력적으로 운영할 수 있다. 이윤추구가 목적인 보험사와 달리, 보험사업의 결과 잉여금이 생기면 회원들에게 계약자배당 형식으로 환급하여 보험료를 정산하고, 손해율 높아지면 보험료 추가 징수가 가능하다.

또 다른 장점은 회원들을 위한 전담 법률 전문가를 고용하여 의료 사고에 연루된 간호사들을 보호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간호사들은 의료사고에 대한 마음의 짐을 덜고 업무에 집중할 수 있다. 아울러 저축공제 상품 등으로 생활 안정에도 기여할 수 있다.

류근옥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는 “간호사를 회원으로 하는 공제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배상책임보험을 수요자 니즈에 맞게 설계하여 공급하면 훨씬 더 효율적인 제도가 될 것”이라며 “공제회를 통해 보건인력의 특별보상 체계화와 업무처리간 위험에 대한 보험적 대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간호인공제회는 과학기술인공제회를 롤모델 삼아 설립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과학기술인공제회 역시 과학기술인들의 인력유출을 막기 위해 설립돼 자산규모 6조원의 대형 공제기관으로 성장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인공제회는 IMF 구제금융 이후 고급인력인 국책연구원들의 해외 유출 문제가 심각해지자 이를 억제하기 위해 설립됐다. 정부에서 정책적으로 공제회를 지원한 결과 과학기술인 처우와 복지수준이 개선되고 해외 이탈도 감소했다. 현재 회원기관 676개, 일반 및 특별회원 7만5364명이 가입돼 있으며, 퇴직연금 및 적립형 공제사업, 적금 등을 운영 중이다.

이처럼 국가 발전의 근간이 되는 인력들은 세심하게 관리할 필요가 있다. 국민의 생명과 보건을 책임지고 코로나19 확산 방지에 최선을 다하는 간호인력의 처우 개선을 위한 공제회 설립은 필수적이다.

이와 관련,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고생한 의료진에 제대로 보상하고 코로나19 별도 수가체계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한 바 있다. 신 의원은 지난 7월 정세균 국무총리를 상대로 한 대정부질문에서 “그동안 최선을 다해 헌신한 의료진에 대한 충분한 보상과 예우가 필요하다”며 코로나19 현장 의료진에 대한 위험수당 지급 등을 검토해달라고 촉구했다.

정부 차원에서도 간호인력 처우개선 및 보호를 위한 방안들은 속속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 구체적인 해법은 나오지 않고 있다. 한 공제업계 관계자는 “간호인 인력부족 문제와 처우개선에 대한 필요성은 모두 공감하고 있다”면서도 “세부 방법론에서 병원단체 등 이해관계자와 이견이 있고, 간호사의 이직률이 높아 공제회가 원활히 운영될지 의문이며, 재정 확보 문제가 있어 지지부진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간호사협회 관계자는 “간호사 인력부족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대한 대책 마련을 논의 중”이라며 “코로나19 병동에 근무하는 간호사들의 안전지침을 마련하기 위해 오는 16일부터 이틀간 일선 간호사들이 참여하는 워크숍을 열고 의견을 수렴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다만, 간호인 공제회 설립에 대해서는 “있으면 좋긴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논의한 바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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