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사회, 풍문 리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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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안 사회, 풍문 리스크
  • 남상욱 서원대 경영학부 교수(한국보험교육연구원 대표) sangwooknam@hotmail.com
  • 승인 2020.11.02 08:3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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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신문=남상욱 교수] 세계 1차 오일쇼크가 일어났던 1973년, 일본 중부에 있는 마을에서 큰 소동이 일었다. 평온하기 그지없던 서민 신용금고에 별안간 예금자가 몰려들면서 너나없이 예금을 인출했다. 조그마한 동네에서 느닷없이 뱅크런(bank run) 사태가 일어난 것이다.

예금자들이 몰린 금고는 설립된 지 40년 된 토요카와 신용금고(豊川信用金庫)로 당시 순간 인출된 예금액만 26억엔이었다.

미처 준비할 겨를조차 없게 벌어진 뱅크런 사태는 일본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 토요카와 신용금고의 재무 건전성을 보장하고서야 진정세로 돌아섰다. 이후 경시청이 이번 일이 왜 일어났는지를 조사한 결과, 사건의 발단은 여고생 3명이 나눈 잡담이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말은 이랬다. 졸업을 앞둔 여고생 셋이 등굣길 전철 안에서 얘기를 나누다 한 친구가 취직 이야기를 꺼냈다.

“나 이번에 토요카와 금고에 취업 확정됐어.”

“그래. 좋겠다. 그런데 금고는 위험하지 않아?” 금고에 강도가 들지도 모르니 위험하지 않냐는 농담이자 시샘의 말이었다. 

그런데 이를 옆에서 듣던 다른 친구가 집에 돌아가 숙모에게 “그 금고 위험해?”라고 물었고, 다음날 그 숙모의 언니가 미용실에 가서 “그 금고가 위험한 것 같아”라고 말한 것이 촉발제가 되어 삽시간에 토요카와 금고가 위험하다는 소문이 곳곳으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나흘째, 설상가상으로 한 가스가게 사장이 세탁소에서 전화를 빌려 직원에게 급히 금고에 가서 120만엔을 인출하라고 지시한 것을 세탁소 주인이 들었다. 이 세탁소 주인은 예전에 은행 부실로 예금을 몽땅 날린 적이 있던 터라 식겁했고, 금고가 곧 망하니 남편에게 빨리 돈을 찾으라 하고는 주변인에게 알리기 시작했다. 사실 전화를 한 가스가게 사장은 결제 대금을 찾아 놓으라는 것뿐이었다.

이후 일이 커지려니, 별사람들이 다 엉겨 붙었다. 그중 아마추어 무선 애호가들의 힘은 막강했다. 이들에 의해 금고가 망할 것이라는 소문이 무선 통신으로 퍼진데다 급기야 금고 이사장이 자살했다는 유언비어까지 돌면서 지역사회는 이내 패닉 상태가 됐다. 

여고생들의 잡담이 있은 지 불과 7일 만에 벌어진 일이다. 발랄한 여고생들끼리의 대화가 생뚱맞게도 신용금고 하나를 망하기 직전까지 몰았던 실제 사례로, 코로나19 등으로 불안감이 고조된 현재 상황에서 한 번쯤 생각해볼 화두가 아닌가 싶다.

풍문이 사회적 패닉으로 쉽사리 확전되는 이유에 대해 심리학자들은 다음 네 가지 요인을 뽑아 설명한다.

첫째, 불안이다. 사람이 불안한 상황에 놓이면 좋은 정보보다는 불안을 느끼는 정보를 더 믿게 된다.

둘째, 정보의 변용이다. 사람 사이에 말이 건너가면서 정보가 생략되고, 또 전달 내용이 조금씩 바뀌면서 변형된 해석을 낳는다.

셋째, 교차 청취효과다. 동일한 내용을 다른 두 사람에게 들으면 그 정보의 신빙성을 높게 느끼게 된다.

마지막으로, 루머의 리얼리티다. 제3자가 구체적으로 루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을 보면 그것이 실제 상황이라고 생각하게 된다.

코로나 19 확산과 대내외 경제 불안, 정치를 둘러싼 반목과 대립 등 온통 편안치 않은 상태다. 살얼음판에 서 있듯 온갖 조심스레 살필 것들만 잔뜩이다.

한마디로 불안 사회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특히나 별것 아닌 풍문, 항간에 떠도는 작은 소문일지라도 자칫 감당하기 버거운 경영 리스크로 증폭될 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좋지 않은 소문, 헛소문에 휩싸이지 않도록 매사 주의해야 한다. 물론 풍문이 사실이라면 집중적으로 우선 해결하는 것이 최선의 리스크 관리 방법이다. 옛말을 빌리자면, 진실은 게을러서 맨 나중에 온다고 한다. 애써 모른 척하거나 못내 방기해 더 큰 일을 당하면 리스크 관리는 빵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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