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보험라이프] 종신보험, 해약의 유혹이 찾아왔다
상태바
[2030보험라이프] 종신보험, 해약의 유혹이 찾아왔다
  • 고라니 kgn@kongje.or.kr
  • 승인 2020.10.19 08: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신문=고라니] 결혼과 동시에 부모님은 각종 보험증권을 넘겨주셨다. 그러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보험만큼은 해지하지 말라고 했다. 끼니 걱정하던 시절에도 꼬박꼬박 보험료를 납입한 덕분에 그보다 어려울 때 몇 배로 덕을 봤다는 것이다. 하지만 신혼집 대출로 인한 막대한 원리금이 빠져나갈 때마다 해약의 유혹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특히 종신보험은 계륵처럼 느껴졌다. 종신보험은 내가 죽어야만 보험금이 지급되는 생명보험이다. 이제 아저씨 소리 듣는 나이가 됐다고는 하나 아직 앞날이 창창한 88년생이었다. 젊을 때 한 푼이라도 아껴 자산을 불리는 게 최우선인 지금, 죽는 날을 걱정하며 돈을 묶어두자니 아깝기만 했다. 차라리 그 돈으로 대출을 갚거나 투자를 하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생각해봤다. 내가 불의의 사고나 질병으로 갑자기 죽는다면 남은 가족은 어떻게 될까. 우리 부부는 맞벌이고 아내는 안정적인 공기업에 다닌다. 향후 2~3년은 자녀계획이 없다. 부모님은 노후준비를 마친 상태다. 당장 나 하나 없다고 생계가 어려워지진 않는다.

문제는 대출이었다. 한 사람의 월급 이상이 고스란히 신혼집 대출금을 갚는데 들어가고 있었다. 아이를 낳기 전 최대한 빚을 줄이기 위해 우린 식비 외 모든 소비를 없앴다. 아내는 당근마켓에서 이번 달만 50만원 어치가 넘는 물건을 팔았다. 이 글은 사무실에서 점심으로 삼각김밥을 먹으며 쓰고 있다. 이처럼 경제적으로 빠듯한 생활은 상당 기간 계속될 예정이었다.

만약 종신보험을 해약하고 대출을 조기상환한다면 그만큼 우리의 일상은 덜 고달파진다. 그러나 보험은 재테크가 아니라 삶을 위해 남겨놔야 하는 것이었다. 병이나 사고로 내 월급이 끊기게 되면 아내는 상당히 힘든 상황에 처한다. 한 사람의 근로소득만으로는 매달 원리금을 상환하며 생활을 유지하기 어렵다. 아이가 생긴 다음이라면 더 절망적이다. 빚만 남겨두고 떠난, 애초에 없는 게 나았던 아버지가 될 것이었다.

비록 현재가 팍팍하기는 하나 우리에겐 더 나은 미래가 기다린다는 희망이 있었다. 그러나 내가 종신보험 없이 죽는다면 남은 가족은 평생 지금과 같은 생활을 계속할 것이 자명했다. 절대 오지 않을 것 같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찾아오는 그 일이 닥쳤을 때 우린 유연하게 대응할 만한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결국 종신보험은 유지하기로 했다. 이미 부모님께서 보험료의 상당 부분을 납입해주셨으니 조금만 더 허리띠를 졸라매기로 한 것이다. 급하게 돈이 필요한 일이 생기면 해약이 아닌 약관대출이라는 차선책도 있었다. 재테크로서의 가치판단에서 벗어나 보험이 갖는 본질적인 의미에 집중하니 보험료가 더 이상 아깝게 느껴지지 않았다.

결혼하기 전이라면 이미 죽어서 쓰지도 못할 돈이 무슨 의미냐며 종신보험을 해약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제 내 목숨은 나 하나만의 것이 아니었다. 내 죽음 이후까지 책임질 이유가 생겼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