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협 공제사업 가능해질까? 공정위에 행정소송 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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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 공제사업 가능해질까? 공정위에 행정소송 제기
  • 김장호 기자 kimjangho@kongje.or.kr
  • 승인 2020.09.17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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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허용된 생협 공제, 10년 지난 지금도 ‘표류 중’
공정위, 생협 정관개정 불인가… ‘권한 벗어난 규제’ 논란
사회안전망 강화 등 공익적 가치 커, 공정위의 전향적 변화 필요

[한국공제신문=김장호 기자] 아이쿱소비자생활협동조합연합회(이하 생협)의 공제사업 진출이 또다시 좌절됐다. 최근 공정거래위원회가 생협이 제출한 공제사업에 관한 정관개정을 불허했기 때문이다. 생협은 10년째 표류 중인 공제사업 진출이 다시 난관에 부딪히자 공정위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있다.

생협 공제사업 좌절, 공정위 정관개정 불허

생협의 정관은 사업범위, 조직 운영, 의결 구조 등 생협이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규범을 담고 있다. 생협이 사업 종류를 변경하기 위해선 총회를 통해 정관을 변경하고 공정위의 인가를 받는 행정절차를 거쳐야 한다.

이에 지난 4월 생협은 생협법에 명시된 사업종류 중 하나인 공제사업을 정관에 반영하기 위해 총회 승인을 거쳐 공정위에 인가 신청을 했으나 6월 최종 불인가 답변을 받았다. 공정위는 ‘공제사업의 안정적 시행과 소비자 피해방지 제도 개선 사항 검토 중’이라며 불허했다. 생협은 지난달 27일 공정위에 ‘정관 변경 불인가 처분 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생협의 공제(共濟)는 조합원이 일정 금액을 갹출해 건강이나 사고 등의 위험에 공동으로 대비하는 조합원 대상 비영리 상호부조 사업이다. 보험과 유사한 형태지만 비영리이기 때문에 보험사보다 저렴한 공제료로 다양한 보장을 제공하는 장점이 있다.

앞서 2010년 3월 생협법이 전면 개정되면서 생협의 사업범위는 공제사업을 포괄하는 것으로 확장됐다. 하지만 현재 공제사업을 시행하고 있는 생협은 한 곳도 없다. 사업 실시방법과 공제계약 및 공제료 등을 정해야 하는데, 인가권을 가지고 있는 소관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시행규칙 등 감독규정을 만들지 않아 10년 넘게 멈춰서있다.

▷관련기사: 생협 공제조합 설립, 정부 무관심 속 표류

게다가 생협에 따르면, 정관개정 인가 절차와 실제 공제사업 인가 절차는 법적으로 분리돼있다. 공정위가 불인가 사유로 내세운 ‘공제사업의 안정적 시행과 소비자 피해 방지가능 여부’는 생협에서 요청한 정관변경 신청 단계에서 확인할 사항이 아니라, 정관이 바뀐 뒤 실제 공제 사업계획서를 검토하는 과정에서 확인할 사항이다.

협동조합 업계에서는 이번 정관 개정이 생협법에 명시된 공제사업을 추가하는 단계였을 뿐인데, 나중에 확인할 내용을 들어 인가를 불허한 것은 ‘법에 허용된 공정위의 권한을 넘어서는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공정위, 권한 넘어서 과도한 규제 남발

이번 행정소송을 계기로 생협공제를 둘러싼 이전 공방들도 재조명되고 있다. 생협공제는 앞서 2014~2015년 2년여간 구체적인 논의가 오간 바 있다. 당시 생협공제 사업의 건전성과 소비자 보호 체계 마련을 목적으로 생협 업계, 법조계, 학계, 공정위 관계자가 참여하는 생협공제 시행을 위한 TF팀이 구성됐었다.

이 TF를 통해 사업추진 주체와 기준, 사업분야 관리 감독 등에 대한 공통의 합의가 도출됐다. 그런데 2017년 공정위가 TF논의 결과(합의)와 무관하게 ‘전국연합회’에만 공제사업을 허용한다는 내용으로 입법예고안을 발표해 논란이 됐다. 결국 업계의 반발을 사 입법이 철회됐다.

이 사건 이후로 공정위는 더이상 제도개선을 위한 노력을 보이지 않았고 10년의 세월이 지나도록 공제사업에 대한 세부인가나 감독기준조차 마련하지 않고 있다. 지금은 오히려 생협법에 명시돼 있는 정관 개정마저 불허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전국연합회’를 구성하여 공제사업을 하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기도 한다. 생협이 ‘전국연합회’를 구성하려면 생협법 72조 ‘설립인가’ 규정에 따라 전체인가 조합원 50% 이상 동의를 얻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생협은 지역, 의료, 대학생 등 복잡 다양한 형태로 설립돼 있다. 탄생배경, 조직의 성격, 이해관계 등이 서로 다른 단체가 전국단위 연합회를 구성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주무부처로서 책임있는 자세 보여야

위맥공제보험연구소에 따르면, 일본의 경우 전체 보험시장에서 공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20%를 넘는다. 이 중 생협공제가 차지하는 비중은 5.2%에 달한다.

우리나라 생협은 1998년 생협법 제정 이래 꾸준히 성장했다. 2018년 기준 조합원 120만 가구, 연간 사업규모 1조1434억원의 거대 조직으로 자리잡았다. 사회적경제 전문가들은 생협공제가 도입되면 경제‧사회적 효익이 클 것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공제는 말 그대로 어려움을 함께 나눈다는 뜻이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지 않기 때문에 보험회사보다 저렴한 공제료로 다양한 보장을 받을 수 있다. 또 호혜와 상부상조의 정신을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공익적 가치가 크고, 사회적 약자에게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효과도 있다.

공정위는 생협 주무부처로서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경제활성화와 사회안전망 확충 차원에서 생협의 공제사업 진출을 전향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다.

생협 관계자는 “생협은 지난 30년간 친환경 농산물 유통을 통해 조합원과 사회에 대한 공익적 가치를 실천해왔다. 그러한 의미에서 생협은 공제사업을 통해 영리회사가 운영하는 보험 상품에 대한 대안을 제시하고 상호부조, 연대정신에 기반한 사회적 가치를 조합원과 나누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코로나19로 사회적 약자의 삶이 바닥에서부터 흔들리고 있다. ‘생협공제’가 새로운 사회안전망 탄생의 시작점이 될 수 있도록 공정위의 적극적인 역할을 당부한다”고 강조했다.

다른 관계자는 “생협이 공제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공정위가 생협공제의 인가기준 등을 마련해야 한다. 공정위의 ‘직무유기’와 도를 넘는 규제로 생협이 공제사업을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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