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협동조합 현황과 공제사업의 전망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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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협동조합 현황과 공제사업의 전망3
  • 김형미 교수 (상지대학교 평생교육융합대학 사회적경제학과) kgn@kongje.or.kr
  • 승인 2020.04.06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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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시작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올해로 설립 125주년을 맞이했다. 국제협동조합연맹 설립을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가 오는 12월 서울에서 개최된다. 우리나라도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래 17000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국공제신문은 국제협동조합연맹의 서울행사를 기념하는 기획으로 ‘한국 협동조합 현황과 공제사업의 전망’에 대해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저명한 협동조합 연구자이며 경제학 박사인 상지대학교 평생교육융합대학 사회적경제학과 김형미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연재 순서
1. 공제회에서 탄생한 협동조합, 전세계로
2. 한국 협동조합운동과 공제
3. 함께 만드는 보장, 협동조합 공제운동

[연재3] 함께 만드는 보장, 협동조합 공제운동

[한국공제신문=김형미 교수] 앞서 두 번의 글을 통해 필자는 공제회에서 협동조합이 탄생했고, 한국 협동조합운동의 발자취에서도 공제회가 중요한 기능을 수행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오늘날 공제회 하면 협동조합을 연상하기는 어렵고, 대부분 특정 산업부문의 구성원을 특별법에 따라 보장하는 준 공적연금이라고 여긴다. 교직원공제회, 건설근로자공제회, 경찰공제회 등 자주 듣는 공제회들이 그렇다.

또 원래는 협동조합 공제로서 오랫동안 실적을 쌓았던 농협공제는 한미FTA 타결 이후 보험법 적용을 받는 민영보험회사로 운영되고 있으며 수협공제, 새마을공제, 신협공제는 해당 조합원이 아니면 잘 모른다. 생협공제도 법적으로 가능하지만 공정거래위원회가 시행령, 감독기준 등을 정비하지 못하여 10년째 표류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협동조합 공제운동’이라는 제목이 생경하게 느껴질 것 같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큰, 일하는 사람들의 협동조합 기업군을 형성한 몬드라곤 협동조합기업의 기적도 그들 스스로 은행을 만들고 공제조직을 만들어서 실직 및 재해 시 보장했다는 것을! 몬드라곤의 조합원 노동자들은 자신들이 일하는 기업에 출자하였다는 이유로 바스크주의 사회보장체계에서 자영업자로 분류되어 고용보험에 가입할 수 없었다. 그러자 1959년에 라군 아로(Lagun-Aro)라는 공제조직을 만들어 실직에 대비한 공제 시스템을 직접 만들었다. 이후 사회보장 제도가 개선되어 협동조합 조합원들도 임금노동자들과 마찬가지로 고용보험 등의 혜택도 받게 되었지만 몬드라곤 협동조합은 조합원들이 직접 상부상조하는 공제조직 라군 아로를 해체하지 않고 더 발전시켜서 연금도 취급했다. 그리하여 1983년 몬드라곤에서 고용 위기가 찾아왔을 때 일시 휴직 및 전환배치 시 수당 지급과 같은 고용지원 프로그램을 라군 아로를 통해서 실행할 수 있었다.

특히, 기존의 사회보장체계에 속하지 않는 일자리나 새로운 부문에서 협동조합 공제는 정부보다 더 빠르게 당사자들을 직접 구제하기도 한다. 일본에서 여성들이 출자·운영·노동을 모두 맡아 하는 일공동체인 워커즈 컬렉티브도, 고용노동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고용보험 및 산재보험에 가입하기 어려웠다. 이들은 취업활동 중 부상, 사망, 휴업 시 수당을 워커즈컬렉티브공제로 설계하여 운영하고 있다. 계약건수는 2945건, 조합원들의 공제부금 3447만 엔, 지불공제금 1371만 엔으로 소규모지만 알차게 조합원들의 안전망 역할을 한다.

고령사회에서 지역 돌봄에 나서는 생활클럽생협 조합원 돌봄 네트워크에서도 공제회인 NPO법인 ACT를 설립하여 1800여 명의 조합원들이 가입해 있다. 주요 상품은 경증장애, 후유증치료, 돌봄 봉사 중 발생할 수 있는 개인배상책임을 모두 커버하는 종합의료보장이다. 프리랜서 IT기술자 15명이 1989년에 창업한 수도권컴퓨터기술자협동조합은 2015년에 사명을 변경하고 주식회사로 전환했지만 지금도 약 1900명의 회원들이 공제회를 통해서 상호보장을 실현하고 있다. 이 공제회는 임의조직이며 소득보상수당, 의료공제, 사업지원대출, 자격취득지원제도를 운영하는데 소득보상수당은 최대 1년 동안 매월 수당을 지급하는 공제다.

이러다보니 일본에서는 협동조합 공제가 보장 부문에 차지하는 비중이 14%이며 공제사업을 실행하는 조합, 연합회는 약 2000여 곳으로 집계된다 (일본생협종합연구소 TPP·공제문제연구회 편, 「공제단체일람(자료집)」). 이들 협동조합 공제는 조합원들이 위기에 처했을 때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해결사 역할을 했다. 지진으로 주택이 파손됐을 때 공제 직원들은 일일이 조합원 자택을 방문하여 견적 및 신청 절차를 수행하고 신속하게 공제금을 지불했다. 조합원에게 ‘찾아가는 공제’였던 것이다. 생협공제는 매년 몇 차례씩 조합원들이 공제금 신청을 놓치지 말라는 유인물을 조합원들에게 배포하고 신청 후 일주일 안에 공제금을 전달한다. 흔히 보험업계에서 발생하기 쉬운 정보비대칭으로 인한 역선택, 도덕적 해이가 끼어들 여지가 없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회적협동조합 동행이 시민활동가들을 위한 소액대출과 같은 공제사업을 시작했고 지역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전국주민협동회를 결성해서 ‘천원의 행복’으로 시작하는 생활안전망을 엮어내고 있다. 매월 조합원이 1000원을 공제부금으로 내면 필요시 30만원 한도의 긴급 의료비를 지원하는 것이다. 1400명 이상의 조합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서울시에선 사회적경제기업 구성원들을 비롯해 서울시민이 참여하는 ‘서울시민공제조합’도 추진 중이다.

최근 코로나 19사태로 인한 타격이 심대하다. 언제까지 이 사태가 지속될지 모르는 불안 속에서도 사회적경제 구성원들은 마치 선발대처럼 먼저 서로 돕는 행동을 취하고 있다. 방역 때문에 지역아동센터에 나갈 수 없어 끼니를 굶게 될 어린이들에게 마을 식당에서 도시락을 제공하도록 시민단체와 생협이 움직였고, 사회적기업 방역업체가 방역 봉사에 나섰고, 지역소상공인 긴급대출에 신협이 나서고 임팩트투자 플랫폼에서는 ‘코로나19브릿지펀딩’을 개설하였고, 한국사회적경제연대회의 코로나 대응본부에서는 “코로나 19로 어려움에 처한 사회적경제기업 고용조정 0%를 선언한다”는 담대한 각오를 피력했다.

이러한 상부상조, 연대의 경험을 기반으로 코로나19 이후 재난, 위기에 대비한 협동조합 공제운동이 곳곳에서 움틀 것이라고 필자는 전망한다. 국내외 협동조합운동의 역사 속에서 발견했고 그 운영모델이 이미 보이는 가운데 절실함이 전파되고 있기 때문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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