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협동조합 현황과 공제사업의 전망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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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협동조합 현황과 공제사업의 전망1
  • 김형미 상지대 평생교육융합대 사회적경제학과 교수(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장) kgn@kongje.or.kr
  • 승인 2020.02.10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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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5년 시작된 국제협동조합연맹(ICA)이 올해로 설립 125주년을 맞이했다. 국제협동조합연맹 설립을 기념하는 뜻깊은 행사가 오는 12월 서울에서 개최된다. 우리나라도 2012년 12월 협동조합기본법이 시행된 이래 17000개가 넘는 협동조합이 각 분야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한국공제신문은 국제협동조합연맹의 서울행사를 기념하는 기획으로 ‘한국 협동조합 현황과 공제사업의 전망’에 대해 3회에 걸쳐 소개한다. 저명한 협동조합 연구자이며 경제학 박사인 재단법인 아이쿱협동조합연구소 김형미 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연재 순서
1. 공제회에서 탄생한 협동조합, 전세계로
2. 한국 협동조합운동과 공제
3.함께 만드는 보장, 협동조합 공제운동

[연재1] 공제회에서 탄생한 협동조합, 전 세계로

최근 한국사회에서 협동조합은 하나의 트렌드처럼 부각되고 있다. 2012년 12월부터 시행된 협동조합기본법 덕분에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고 또 정부와 지자체들이 협동조합 및 사회적경제를 양극화와 실업, 지역 사회문제 해결의 중요한 대안으로 인식하여 적극적인 정책을 펼쳤기 때문이라고도 하겠다.

정부 집계에 따르면 새로운 협동조합은 7년 사이에 1만7천여 개가 설립되었다. 청각 장애인들의 택시 협동조합, 중고교생들의 학교협동조합, 여성의 생애주기로 인한 경력단절문제를 해결하려는 여성협동조합, 원도심에 활기를 불어넣는 청년들의 협동조합 등, 이전에는 없었던 창업과 일자리, 지역사회 활성화의 대안들이 생겨났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260년 전 산업혁명이 시작되던 시기에 협동조합이 탄생한 것도 당시 거대한 사회·경제 전환으로 인해 내몰린 사람들이 스스로 대안을 찾아 나섰기 때문이다. 나를 위하는 게 모두를 위하는 게 되는 길을 찾아 먼저 나선 사람들의 단결과 연대, 다수가 참가할 수 있는 방법론들을 개발하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발전한 사업모델을 만들어가는 약 100년의 과정이 있었다.

협동조합이 탄생하기 이전에는 부유한 자본가나 지주만 자본을 마련하는 줄 알았고 그게 상식이었다. 하지만 상인의 횡포와 부정직한 거래에 분노한 노동자들은 공동출자라는 새로운 협동방식을 실행하여 자신들이 직접 정직한 사업을 일으켰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었다. 1760년 영국에서 선조공들이 세운 공동제분소가 그 시작이라는 기록이 전해진다. 노동자와 여성의 참정권이 없던 19세기에 로치데일공정선구자 협동조합은 조합원이라면 누구나가 차별받지 않고 평등하게 의결하는 1인 1표의 민주주의와 조합원 교육을 원칙으로 운영했다. 1844년 이후 견지하고 있는 이 원칙은 오늘날까지 협동조합의 핵심 요소로 계승되고 있다.

또한 협동조합은, 공동구매방식을 통해 생산과 소비의 거리를 단축하고, 다수의 대중이 단결할수록 가계에도 도움이 되는 경제적 효과도 창출했다. 19세기 유럽에서 탄생한 소비자협동조합들과 신용협동조합은 이윤축적이 아니라 조합원 이용을 목적으로 운영하여 독점자본의 횡포에서 서민들의 생활을 방위하고 수백만 명의 생활을 개선했다. 오늘날 일반화한 마일리지제도의 유래는 19세기 영국협동조합의 조합원 환원(dividend)에서 유래한다.

연달은 패전과 영토 축소, 농산물 가격의 폭락으로 농민들이 기아에 시달리던 1880년대 덴마크에서는 낙농협동조합과 양돈협동조합이 탄생해서 경종 및 축산복합농업을 시도하고 공동품질기준 확립, 공동제조, 공동출하로 농민들이 고품질 농식품을 생산하고 부가가치를 공유하여 농촌을 “농민의 낙원”(양주삼, 1930년 동아일보 연재기사 제목)처럼 바꾸어 놓았다.

이처럼, 19세기 산업혁명이 발생하는 곳곳마다 협동조합도 전파되어 1895년 국제협동조합연맹(ICA) 설립총회에는 유럽과 러시아, 인도, 미국, 아르헨티나, 호주 등 14개국에서 대표를 파견할 정도였다. 국제협동조합연맹은 이후 두 번의 세계대전, 냉전, 경제위기에도 분열되거나 해산하지 않았고 평화의 원칙을 견지하면서 오늘날에는 10억 조합원과 2억8천만 명의 고용을 아우르는 국제비영리조직으로 유엔과 협력하고 있다. 100년 이상의 역사를 지닌 국제비영리단체는 국제올림픽위원회, 국제적십자사와 국제협동조합연맹이다. 올해 12월, 125주년 기념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된다.

그런데 이러한 협동조합의 탄생의 모태가 되었던 게 공제회*라는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를테면, 영국에서는 17세기 후반에 업종별로 우애조합(freindly society)이 조직되어서 질병, 실업, 사망, 출산에 대비한 공제를 실시했고 18세기에 들어서면 남편과 사별한 여성들의 공제회(The Freindly Society of Widows)처럼 여성회원으로만 구성된 공제회도 활동하고 있었다. 프랑스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협동조합이 탄생했던 배경에도 공제회가 있다. 1833년 파리에서 양복 재단사들의 파업을 주도했던 파리재단사들의 공제회(Société Fraternelle Des Ouvriers Tailleurs)에서 파업 기간 생활을 위해 파업참가 재단사들과 시민의 출자를 모아 만든 국민작업소가 그렇다.

1900년대 초반, 한반도에 협동조합이 유입될 때 협동조합을 설명하면 사람들은 바로 계를 떠올렸다고 한다.

정치가, 자본가 등 유력 소수에게 기대지 않고 당사자들 스스로가 단결하여 사업을 일으키려던 협동조합의 설립자들은 공제회의 경험에서 우선 자본을 모으는 방법을 배웠다. 소액을 정기적으로 모아서 축적하는 방식이다. 정기적이고 반복적인 공동 부금은 상호 신뢰와 연대의 울타리가 되었다. 공제회는 공제금 급부로 위기에 처한 회원을 구제했을 뿐만 아니라 일하는 사람들의 권리 보장과 노동 조건 개선, 참정권 획득을 위한 학습과 자치활동의 산실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협동조합과 결합한 공제는 그 범위를 더욱 확장하여 상호보험 수준으로 발전해서 공동주택 건설을 위한 주택금융조합이 탄생하기도 했다. 협동조합과 공제는 태생이 같은 제도라고 할 수 있다.

오늘날 우리나라의 공제회는 협동조합과는 무관하게 법정 복리후생단체처럼만 인식되는 듯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협동조합운동은 어떻게 시작했고 또 공제운동과 이어졌는지 다음 편에서 살펴보겠다. (끝)

* 각종 문헌에서 쓰이는 우애조합, 공제조합, 상호부조조합 등의 명칭을 여기서는 공제회라고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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