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해 속에 발전하는 보험과 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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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해 속에 발전하는 보험과 공제
  • 한국공제신문
  • 승인 2020.01.13 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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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옥 교수(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보험 혹은 공제보험은 은행의 저축 상품과 유사하지만, 그 본질은 크게 다르다. 이러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하면 보험에 대해 불평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미국과 같은 선진국에서도 보험 산업을 ‘가장 오해받는 산업’이라고 한다.

퍼거슨(Niall Fergurson)이 쓴 ‘세계 금융의 역사’를 보면 17세기 이후 유럽에서는 은행과 채권시장이 이태리 르네상스의 물적 기반이었고 기업금융은 영국과 네덜란드 제국 건설에 필수적이었다. 반면에 20세기 미국의 승리는 보험(insurance), 모기지(mortgage) 상품, 소비자 신용의 발전에 기인한다고 평가된다.

그러나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에서 남자들이 보험회사에 다니면 장가들기가 쉽지 않았다고 한다. 보험은 왠지 사기 같다는 사람들이 많았고, 사고가 나도 보험사들은 보험금을 제대로 안 준다는 부정적 이미지도 있었다. 우리나라 경제발전 과정에서도 보험은 종종 ‘금융의 서자’ 취급을 받았다. 반면에 은행은 정부의 비호 아래 땅 짚고 헤엄치면서 늘 금융시장에서 장남 노릇을 하였다.

최근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2019년 1~3분기에 제기된 금융 민원 건수는 총 6만 1천 건 정도이며 이중 보험 관련 건이 61.9%(생명보험 24.8%, 손해보험 37.1%)로서 압도적으로 많다. 반면에 은행 거래와 관련된 민원은 12.3%로서 보험의 1/5 수준에 불과하다. 금융투자 관련 민원은 더욱 낮아 전체의 5.2%이다. 왜 보험에 대해서는 소비자 민원이 많을까?

금융소비자 불만의 원인을 자세히 살펴보면 은행 저축처럼 금융상품이 단순하고 대칭적 등가(等價) 관계이면 민원이 매우 적다. 반대로 보험이나 파생상품처럼 수익구조가 복잡하고 특히 상황 의존적인 조건부 청구 자산이면 민원이 많이 발생한다.

2019년에 은행에 대한 민원 건수는 전년 대비 4.9% 증가하였다. 그 이유는 은행이 보험과 같이 복잡한 ‘파생금융연계상품(DLF 혹은 DLS)을 만들어 판매하는 것이 증가하였기 때문이다. 과거 2008년에도 수출업체들의 환율변동 손실위험을 헤지하도록 파생상품을 융합한 키코(KIKO, knock-in knock out) 상품을 은행이 판매하였는데 역시 불완전 판매로 민원이 많이 발생하였다.

보험은 대표적인 조건부 계약이고 사고확률에 기초한 사행계약이다. 그래서 보험 판매 시에는 청약자의 리스크를 평가하는 언더라이팅이 필요하고 보험금 지급 시에는 그 청구의 정당성과 피해 규모를 심사하는 손해사정을 해야 한다. 이러한 절차는 소비자들에게 매우 귀찮은 고통이고 비용이다. 그래서 보험에 대해서는 소비자의 불만이 많을 수밖에 없는 운명이 있다. 언더라이팅 과정에서 가입거절을 당하거나 보험료를 높게 내야 하면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사고가 나면 손해사정 결과에 따라 보험금액이 달라지면 여기에서도 불만이 생기기 쉽다. 심지어 사고의 고의성이 있거나 보험계약의 조건을 지키지 않았으면 보험금 청구가 거절되기도 한다. 그러면 해당 계약자는 자기 잘못은 접어두고 보험회사를 사기꾼이라고 비난한다. 반면에 은행에 가면 누구나 조건 없이 저축통장을 개설할 수 있고 예금된 돈을 언제나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면 보험도 은행 저축처럼 언더라이팅이나 손해사정 절차를 생략할 수 있을까? 그럴 수는 없는 것이 보험의 운명이다. 보험을 은행 저축처럼 운영하면 불량위험체가 우량 고객의 이익을 침해하게 되고 이를 방치하면 우량 고객은 결국 보험가입을 포기하고 시장을 떠나게 된다. 20대 젊은 사람과 70대 노인에게 동일한 보험료의 생명보험을 판매하면 20대는 그런 보험을 들 리가 없다. 또한, 손해사정이 없으면 보험사기가 난무하고 보험회사도 사업을 포기해야 한다.

그러면 소비자들의 오해와 불만에도 불구하고 보험이 우리 경제에 지속적으로 존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인이나 기업은 미래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고를 당하면 혼자의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경제적 곤경에 빠질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은행을 이용하면 부족한 돈을 대출받아 피해를 복구시킬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돈은 갚아야 할 빚이다. 게다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고 현금흐름이 좋을 때는 대출을 받기 쉽지만, 사업의 실패나 대형사고로 경제적인 곤경에 빠지면 은행은 갑자기 냉담해진다. 맑은 날에는 우산을 빌려줘도 정작 비가 오면 우산을 안 빌려주는 것이 은행 대출의 태생적 속성이다.

그러나 보험은 반대이다. 대형사고나 질병으로 개인이 경제적 어려움에 빠지면 보험금을 지급해 주기 때문이다. 보험료 대비 아무리 많은 보험금을 받아도 이를 상환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보험은 길에서 강도를 만나 어려움을 당한 사람을 도와주는 좋은 이웃과도 같다. 보험은 ‘선한 사마리아인(good Samaritan)’ 이다. 강도 만나 쓰러진 자를 보고도 지도층인 제사장이나 레위인 들은 못 본채 지나쳤다고 한다. 1706년 영국 런던에서 처음 설립된 생명보험사인 아미커블(Amicable Society)은 가장의 죽음으로 과부나 고아가 된 불쌍한 유족들의 생계유지를 위해 출발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우리처럼 은행 중심으로 금융 산업을 성장시켜온 나라에서는 보험에 대한 오해가 더욱 심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지만 보험은 21세기 불확실성이 증폭되고 저금리, 저출산, 고령화 사회가 진전되면서 오히려 금융을 선도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오늘날 금융의 본질은 리스크(risk) 관리이다.’ 이 말은 노벨 경제학 수상자 로버트 실러(Robert Schiller)가 한 말이다. 리스크관리는 위험을 여러 사람이 함께 공유하여 분산시킴으로써 각 개인에게 돌아가는 피해를 최소화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리스크 관리는 전통적으로 가족 혹은 씨족을 중심으로 금전 및 사회적 손실 문제를 함께 분담하여 개인의 리스크를 줄여왔다. 그러나 가족이나 씨족은 규모가 너무 작은 단위이므로 리스크를 분산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개인의 리스크는 사회 전체 혹은 시장으로 분산시킬 필요가 있고 그 결과 금융 제도가 발달하게 되었다. 이러한 리스크 관리 메커니즘을 이끄는 것이 보험이자 공제이다. 2020년에는 보험 및 공제 산업이 더욱더 혁신하고 진화하면서 금융시장에서 그 역할을 확대해 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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