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이천정과 ESG라는 우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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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이천정과 ESG라는 우물
  • 김민석 마스턴투자운용 브랜드전략팀장·ESG LAB 연구위원 listen-listen@nate.com
  • 승인 2024.06.03 10:1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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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ESG 오디세이]

[한국공제보험신문=김민석] 갈이천정(渴而穿井). ‘목이 말라야 비로소 우물을 판다’는 뜻이다. 미리 준비하지 않고 있다가, 급하게 허둥지둥 대책을 세우는 것을 꼬집는 말이다. 뒤늦게 어떤 사안에 대응하다 보면, 실기(失期)하는 경우가 많다.

최근 들어 ESG에 대한 볼멘소리가 곳곳에서 들린다. ESG가 중요하다고 경쟁하듯 앞다퉈 이야기했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ESG 회의론’, ‘ESG 무용론’을 제기하는 것이다. 소극(笑劇)이 따로 없다.

이는 아직도 ESG를 단순한 사회공헌활동 정도로 잘못 인식하는 것에 기인한다. ESG는 투자와 연관된 경영 트렌드이고, 최근에는 의무적인 공시 제도와도 깊이 연결된다. 연탄 배달하고, 헌혈과 김장을 통해 사랑을 나누는 활동에 그치는 게 아니라는 것이다. (물론 이런 활동의 가치와 의미는 인정한다.)

‘그린래시’라는 조어도 나왔다. 녹색정책(green)과 반발(backlash)의 합성어다. ESG의 종말을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런 흐름을 보며 역으로 생각하게 된다. 반발과 종말을 운운할 정도로 ESG의 영향력이 크다는 것을. 그래서 되레 ESG는 퇴각할 것 같지 않다.

지금부터 차근히 각 조직에 ESG DNA를 내재화하지 않으면, 세계적인 ESG 규제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 어렵다. 치열한 경쟁이 기본값이 되는 경영 환경에서 뒤늦은 행보를 이해해 줄 투자자나 고객은 없다.

각 분야에서 시장점유율을 확보하기 위해 생존을 건 혈투를 펼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ESG 이슈를 ‘갈이천정’의 태도로 임하는 것은 곧 자멸을 의미한다. 인정이 있는 일상에서는 목이 마른 이웃에게 물을 건넬 수 있을지 모르지만, 경영 문법에서는 목이 마르기 전에 우물을 파 놓는 것이 전제되어야 마땅하다.

물론 ESG가 기업 경영의 전부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ESG라는 용어 자체는 다른 단어로 바뀔 수도 있을 것이다. ESG가 ABC가 되거나 GSE가 될 수는 있다. 그럼에도 지속가능경영이라는 테마는 앞으로도 유효할 것이다. 그 지속 가능함을 견인하는 다양한 제도와 정책이 수립되고 있으며, 이는 기업에 또 다른 의무 사항이 되고 있다. 비재무성과의 중요성도 쉬이 소실되지 않을 것이다.

미국 대선까지 이야기할 것 없다. 당장 우리 얘기가 될 수 있다. ESG라는 도저한 물결, 어떤 부서에서 일하든 나라고 예외가 될 수 없는 법이다. ESG팀이든 재무팀이든, 커뮤니케이션팀이든, 기획팀이든, 법무팀이든, 인사팀이든, 총무팀이든, 영업팀이든 ESG를 알아야 한다. 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면 더욱이.

ESG를 둘러싼 사회적, 정치적, 문화적 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중심을 잡아야 한다. ESG에 대한 철학, 태도, 시선을 고민해야 할 때다. ‘ESG적 생각’이 긴요할 터이다. 경영학의 시선뿐 아니라 사회학적 렌즈로도 ESG 현상을 해석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우물의 물은 한정되어 있다. 양뿐 아니라 물을 기울 시간도 제한되어 있다. ESG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를 되돌아보자.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로 글을 마친다. “준비에 실패하는 것은 실패를 준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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