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보험과 공제의 궁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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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액보험과 공제의 궁합
  • 류근옥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kgn@kongje.or.kr
  • 승인 2019.10.21 07:2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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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에 들어와 소액보험(microinsuranc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소액보험의 가장 큰 특성은 목표고객이 저소득층이다.저소득층은 세계 인구 전체의 피라미드 구조에서 보면 아랫부분에 몰려 있는 많은 사람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들은 세계적으로 그 수가 대단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경제적으로 소외되었다. 그러나 그들의 삶에서도 건강, 상해, 질병, 식량, 가옥 파손 등의 위험으로부터 오는 손실보장이 절실히 필요하다. 하지만 그들은 보험을 구매할 수 없는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그래서 보험시장에서는 2가지의 시장실패 현상이 지적된다.
하나는 저소득층에게 필요한 보험을 찾기가 어려운 문제(availability problem)이다. 이윤을 추구하는 민영 보험사들에게 저소득층은 관심 밖이기 때문에 그들이 적합한 보험을 제대로 공급하지 않았다.
또 다른 시장실패는 저소득층이 필요로 하는 보험 상품이 설령 있다 하더라도 그들은 그것을 구매할 수 있는 경제적 역량이 없다(affordability problem)는 것이다. 물론 두 가지 시장실패는 독립적으로 존재하기보다는 상호의존하여 발생하는 문제이다. 21세기에는 이러한 빈곤층과 시장실패 문제를 남의 문제로 내버려 둘 수는 없었다.

다행히 오늘날에는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CSR)이 강조되면서 이윤을 추구하는 주식회사형 민영보험사들이 소액보험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기업은 악덕 기업으로 매도되거나 소비자들의 불매운동이 벌어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민영보험사들은 어찌 보면 딜레마에 빠져 있다.
주식회사의 속성상 보험을 판매하면 이익을 내야 하는데 소액보험에서 이윤을 달성하기는 그리 쉽지 않다. 보험료가 저렴하여 설계사들조차도 관심을 가지기 어렵다.
게다가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은 농촌이나 산간벽지 그리고 도시의 낙후지역이 많아 새로운 판매망을 구축하기도 어렵고 기존 판매방식으로는 사업비가 많이 든다.
그렇다고 민영보험사들이 영업이익을 무시한 채 저소득층에 대한 자선 사업으로 소액보험에 접근하면 일시적으로는 이러한 사업을 영위할 수는 있어도 그 영속성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주주총회에 나가 경영 성과를 평가받아야 하는 최고경영자(CEO) 처지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 해법을 공제나 상호회사에 의한 소액보험 판매에서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국제노동기구(ILO)가 2006년에 발간한 ‘소액보험 개요서(microinsurance compendium)’를 보면 전 세계 소액보험 공급자의 대다수는 상호회사나 공제라고 한다.
동 개요서에 따르면 국제연합무역개발회의(UNCTAD)가 1977년에 ‘공제조합에 의한 소액보험’을 공개적으로 지지하는 결의를 하였다.

그러면 공제조합의 소액보험이 저소득층 시장에 적합한 이유는 무엇일까?
한 마디로 궁합이 잘 맞는다는 것이다.
우선 공제는 개별적으로는 나약한 보험자와 소비자가 그들의 자원을 한데 뭉쳐서(pooling) 규모의 경제가 가지는 이점을 살리기에 적합한 조직이다.

공제는 자본가가 아닌 회원이 모여 만든 조직이라서 친밀감(affinity)이 높다. 그래서 공제의 회원 개인별로는 미약하여 목소리를 낼 수 없지만, 그들이 집단화하면 의미 있는 결과를 성취할 수 있다. 이렇게 뭉치는 원리는 보험의 포트폴리오 위험 분산에 아주 적합하다.
그래서 공제는 조합원 사이에 상부상조의 정신이 강하고 회원 간 유대감이 높다. 게다가 공제는 총회에서 1인 1표를 행사하여 의사결정이 이루어지는 ‘사람 중심의 조직’이다. 이것이 주식회사형 민영보험과 다른 점이다.

그다음, 공제조직은 낙후된 지역 사회에서 농업생산, 어업, 가공처리, 목공예, 소매상 등 서로 다른 많은 활동 영역을 동시에 커버한다. 그래서 공제 보험은 저소득층들이 필요로 하는 생활필수품을 공급하여 기본 욕구들을 충족해 줄 수 있고 아울러 농어촌지역은 물론 도시의 저소득 계층들에게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접근성(accessibility)이 높다.

게다가 공제는 민영보험사와 비교하면 비용을 절감하고 보험료 수준을 낮추어 저소득층이 보험을 구매할 수 있는 능력(affordability)을 높여줄 수 있다. 공제는 지역 전체에서 판매 캠페인을 전개할 수도 있고 우리나라 농협 혹은 우체국 금융에서 보듯이 기존의 창구나 망을 이용하여 보험을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다. 그래서 공제는 보험료 수납이나 보험금 지급 절차가 간단하고 비용 효율적이다.

마지막으로 공제는 거두어들인 보험료를 해당 지역의 경제 활성화에 투자(investment in community)하여 그 지역 저소득자들에게 일자리와 생활수준을 높여줄 수 있다. 게다가 공제에서는 고객이 회원이고 주인이기 때문에 그들 지역의 건강증진 및 손실방지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하고 대처하는 힘이 크다는 것이다. 그래서 주식회사형 민영보험사의 경우와 비교하면 보험사기나 도덕적 위태가 적다는 것이다.

따라서 국내에서도 민영보험이 그동안 도외시하였던 소액보험을 활성화하여 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저소득 소비자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하여 궁합이 잘 맞는 공제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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