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크래프트에서 배운 보험의 쓸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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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에서 배운 보험의 쓸모
  • 고라니 88three@gmail.com
  • 승인 2022.07.26 10: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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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크래프트 게임 장면. ⓒ블리자드 홈페이지
스타크래프트 게임 장면. ⓒ블리자드 홈페이지

[한국공제보험신문=고라니] 200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친구, 형, 동생들을 하나로 이어주는 주제가 있다면 스타크래프트를 빼놓을 수 없다. ‘스타’라고 하면 아이유나 BTS 대신 게임을 떠올리는 우린 스타크래프트에서 인생을 배운 세대다. 그 속에는 팀플레이의 중요성, 치열하게 상대방의 생각을 가늠하는 역지사지의 자세, 물량 앞에 장사 없다는 진리가 담겨 있었다.

그중에서도 멀티기지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보험으로 멀티기지를 확보해두면 게임의 판도가 달라진다. 멀티기지에서 들어오는 추가적인 자금으로 신속하게 영토를 넓히고, 남들이 저글링 한 부대 뽑을 때 두 부대를 뽑을 수 있다.

멀티기지의 진가는 본진이 털렸을 때 드러난다. 기습공격으로 본진이 초토화되더라도 멀티기지만 있다면 얼마든지 반전을 노릴 수 있다. 현금흐름이 끊기지 않은 덕에 요충지에 방어기지를 짓고, 필요한 병력을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다 이긴 양 의기양양하던 상대방의 뒤통수를 치는 쾌감은 스타크래프트에서만 맛볼 수 있는 묘미다.

IT나 반도체처럼 잘 나가는 업종에서 일한다면 관심 밖일지도 모르지만, 내게 멀티기지는 최대의 관심사다. 정부 기조에 따라 당분간 실질소득 하락이 예상되는 공공기관 직원으로서 물가상승분만큼은 더 벌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다. 인플레이션으로 점심 한 끼 사 먹는 것도 큰 결심이 필요한 지금, 어떻게 하면 추가로 파이프라인을 만들지 매일 고민한다.

직장인 커뮤니티에서도 할만한 부업을 묻는 글이 허다하게 올라온다. 그러나 많은 회사는 사내규정으로 겸업을 금지하고 있어 뾰족한 수가 없다. 이미 당근마켓에 올릴만한 건 다 팔았다. 가족 명의로 스마트스토어나 배달대행을 해볼까 싶지만 섣불리 시작하긴 불안하다. 새까만 안개를 해치며 미네랄을 찾는 여정은 고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순 없다. 게임에서만큼이나 현실에서도 본진을 털리는 일이 허다하기 때문이다.

우린 이미 뜬금없이 나타난 코로나19로 일상이 얼마나 심각하게 망가질 수 있는지 경험했다. 승승장구하던 선배가 암을 진단받고 몇 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거나, 투자 실패로 집을 날리고 가정이 파탄 나는 모습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모두 계획하지 않았던 일이다. 그러나 그 일은 실제로 일어나고, 우린 본진이 털리는 걸 두 손 놓고 바라볼 수밖에 없다. 멀티기지가 없다면 말이다.

삶 곳곳에 멀티기지라는 보험을 만들어 놓는 건 불확실한 현재를 살아가는 이들의 숙명이다. 우리의 인생 역시 장기전이기에, 전투에는 패해도 전쟁에서 이기자는 마음가짐으로 살아가야 한다. 지금 내가 건설하고 있는 멀티기지는 공인중개사다. 잠을 줄여가며 직장생활과 공부를 병행하는 게 쉽지는 않다. 하지만 지금 공부해 두어야 예기치 않은 기습공격이 들어와도 초연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회식 후에도 책상 앞에 앉게 된다.

게임은 이기면 끝나지만, 내 전쟁은 언제쯤 끝날까 싶기도 하다. 캐리어나 베틀크루저를 타고 전장을 누비기는커녕, 평생 침 흘리며 헥헥대고 달리다 지뢰를 밟고 장렬히 전사하는 저글링 신세가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끝까지 버틴 것만으로 승리했던 경험을 우린 스타크래프트를 통해 해봤으니까, 이 끝도 결국은 통쾌할 거라 믿어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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