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액단기보험의 문제점과 활성화 방안
상태바
소액단기보험의 문제점과 활성화 방안
  • 류근옥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kgn@kongje.or.kr
  • 승인 2022.07.15 09: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소액단기보험 한국 VS 일본]

[한국공제보험신문=류근옥 교수] 우리 정부는 2021년 6월 보험업법시행령을 개정하여 적은 자본으로 소액단기보험사를 설립할 수 있도록 시장 문을 열어 주었다. 기존 보험사들에게는 돈이 되지 않아 소외되었던 소액보험이 소비자들의 욕구 충족과 편익 제고를 위해 새로운 제도로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소액단기보험사의 설립 자본금은 종합보험사의 300억 원에 비하여 훨씬 적은 20억 원이다. 일단 커다란 규제 완화와 배려처럼 보인다. 그러나 제도 도입 후 거의 1년이 지나도록 새로운 소액단기보험사의 설립 신청은 아직 한 건도 없다. 이상한 일이다. 이웃 일본에서는 2006년 제도 도입 후 소액단기보험사가 꾸준히 늘어나 2020년 말에는 무려 110개나 된다. 일본 시장을 모델로 우리 시장에서도 소액보험사의 설립이 가능하도록 해 주었는데 왜 활용이 안 되는 것일까?

한마디로 말하면 한국의 제도는 선진국 일본과 겉모양은 비슷해도 세부(details) 내용으로 들어가면 차이가 크고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정부가 21세기 환경 변화에 맞추어 새로운 시장을 활성화시켜 주긴 해야겠는데 후에 부실감독 책임에 대한 비난을 면하기 위하여 처음부터 너무 방어적이고 보수적인 제도로 설계하였다. 그 결과 비효율적인 요소가 많고 결국 계륵(鷄肋) 신세가 되고 말았다.

우선 소액단기보험사의 설립 자본금 요건을 보면 우리나라는 20억 원이다. 반면 일본의 경우에는 1억 원(1000만엔) 정도이다. 무려 20배의 차이가 난다. 오늘날 일본 소액단기보험사들이 보유한 실제 자본금이 평균 20억 원이라 우리 정부는 20억 원으로 맞추었다고 한다. 그러나 일본 보험사의 경우에는 오랜 기간 영업을 하면서 창출된 영업이익 등으로 자본금을 꾸준히 확충해서 이루어진 결과가 평균 20억 원이다. 우리는 처음부터 20억 원이 있어야 시장에 진입할 수 있으니 장벽이 상대적으로 너무 높다. 소액단기보험사가 판매하는 상품은 주로 소액의 보장성 보험이고 1년 이내에 보장이 종료되는 소멸성 보험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저축성 보험이나 장기보험을 많이 보유하고 있는 기존의 종합보험사들처럼 리스크 버퍼(buffer), 즉 자본금이 클 필요가 없다. 일본처럼 보수적인 나라에서도 소액보험사의 설립 자본금을 1억 원으로 대폭 낮춘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보험사들에게 불필요하게 많은 자본금을 보유하도록 요구하면 자본조달비용의 증가 등 비효율성을 초래하고 그 결과 보험사들이 창의적 경영이나 유연성을 발휘하기 어렵다. 행정편의적으로 제도를 만드는 한국에서는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소액단기보험사들이 제대로 나오기 어렵고 보험시장의 혁신과 경쟁력도 기대하기 힘들다.

또한, 소액단기보험은 보험료가 저렴한 것이 특징인데 큰 비용을 부담하고는 흑자를 내기 어렵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소액단기보험사의 관리와 운영에서도 일본보다 훨씬 비용부담이 크게 설계되어 있다. 이것 역시 심각한 진입 장벽이다. 한국의 소액보험사들은 기존 보험사처럼 예금보험제도에 가입해서 보험료도 내야 한다. 대신 일본은 보증금 공탁으로 이를 갈음하게 해준다. 한국의 소액보험사들은 까다로운 지불여력(K-ICS) 기준도 충족해야 하므로 전문 인력도 많이 확충하고 비용부담도 해야 한다.

게다가 소액단기보험사들에게 기존 보험사들과 동일한 지불여력 제도를 그대로 적용하는 것도 넌센스이다. 기존 종합보험사에 비하여 경영상 노출된 리스크가 다르기 때문이다. 물론 소액보험사도 보장 및 운영 리스크에 노출되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이에 대비한 지불여력을 요구하는 것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소액보험은 대부분 보장 리스크가 낮은 상품이다. 게다가 보험 기간이 1년 이내로 듀레이션이 매우 짧아 금리 리스크도 별로 없다. 따라서 소액단기보험에 대해서는 감독의 단순화와 유연성 제고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기존 보험사들은 세칭 ‘미니(mini)보험’이라고 부르는 소액보험을 만들어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으므로 굳이 높은 비용을 들여 전문적인 소액단기보험사를 신설할 필요가 없는 것이 시장 활성화의 저해 요인이다. 소액단기보험사의 설립 자본금 요건이 크게 낮은 것도 아니고 보험사 운영상 비용부담이 적은 것도 아니므로 소액단기보험사를 별도로 만들 유인이나 실익은 적다. 한마디로 계륵이다. 기존 미니보험과 소액단기보험은 모두 단순한 상품구조와 소액의 보장금액, 그리고 저렴한 보험료라는 점에서 같다. 차이점은 소액단기보험에서는 간병보험이나 연금보험과 같은 장기보험이나 자동차보험 등이 제외되고 보험계약 기간도 1년으로 제한된다.

반면 미니보험에서는 상품의 종류나 보험 기간을 제약하지 않으며 대신 보험료가 1만원 이하로 매우 저렴하다. 그 결과 기존 대형 생명보험사들은 이미 암보험이나 질병 및 상해 보험 등 다양한 미니보험을 개발하여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다. 손해보험사들 역시 여행자보험, 레저보험, 반려동물(pet)보험 등을 미니보험으로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 금융당국은 선진국 제도와 겉모양만 닮은 소액단기보험 제도로 시대가 요구하는 규제 완화의 흉내나 생색만 내서는 안 된다. 제도의 세부적인 요건을 합리적으로 완화해야 한다. 그래야 새로운 IT기술과 보험 아이디어를 가진 많은 스타트업(startup)들이 소액보험 시장에 쉽게 진입하여 유연하게 창의적으로 경영 활동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비자들의 다양한 욕구를 경쟁적으로 충족시켜 줄 수 있는 기발한 보험사와 상품이 많이 나와야 국민 편익이 증대되기 때문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