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보험고지의무 변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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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보험고지의무 변천사
  • 한창희 국민대 교수 chgm@kookmin.ac.kr
  • 승인 2022.05.04 1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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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한창희 교수] 보험은 다양한 위험을 마주하는 요즘 소비자와 기업에게 필수적인 제도로 자리잡았다. 근대보험은 12세기말 북부이탈리아의 롬바르드에서 탄생했지만 그것이 꽃피운 곳은 영국 런던이다. 원래 커피하우스이었던 로이즈로 대표되는 영국보험회사는 17세기 말에 해상보험으로 시작해 시민사회가 성숙한 19세기부터는 화재보험·생명보험 등 가계보험의 성장을 이끌었다.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책임보험을 창안했고, 자동차, 항공기의 출현에 따른 자동차보험·항공보험의 시대를 열었다. 뉴욕이 금융 중심이 된 오늘날에도 런던은 세계보험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보험계약자가 보험계약을 체결할 때 중요한 것이 ‘고지의무’다. 보험자에게 중요한 사항을 알려야 하고, 중요한 사항에 대해 잘못된 정보나 부실정보를 알려서는 안된다. 보험사업은 급부-반대급부 균형의 원칙에 따라 개별 보험계약의 위험 수준에 따라 보험료를 부담하게 하고, 또한 일정한 위험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보험을 인수하지 않는다는 기본원리에 따라 영위되고 있다. 그러므로 위험 정보를 수집하여 위험의 수준을 판정할 필요가 있으나, 이 정보는 보험계약자 측에게 편재되어 보험자는 이런 내용을 보험계약자 측으로부터 고지를 받는 것이 필수불가결하다. 이와 같은 이유로 고지의무는 보험제도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

영국은 성문법주의를 택하는 우리와 달리 판례가 근간을 이루고 있다. 법원판례에 의해 고지의무가 인정된 것은 지금부터 300여년 전인 18세기 전반기이다. 영국에서 고지의무는 ‘최대 선의 의무’라고도 칭해왔는데, 최대 선의라는 용어는 1707년의 코르벳 대 콕번사건에서 사용되었다. 1723년의 대 코스타 대 스캔드랫사건에서는 선박이 실제로 멸실되지는 아니하였더라도 커다란 위험에 처해 있다는 정보를 보유하는 것은 사기라고 판시하였다. 이 사건은 ‘정보가 보험자와 공유되었더라면, 보험자가 더 높은 보험료를 책정했을 것이라거나 인수를 거부했을 것’이라고 판시하고 있는데, 이는 우리 판례에서도 고지해야 할 중요한 사항의 판단기준인 점에서 중요하다.

1743년의 루키 대 털몬드사건에서는 실제 소유자가 미국인인 선박에 대하여 보험중개사가 자신의 이름으로 보험에 가입했는데, 이는 영국에서 1785년에야 위법으로 판정됐다. 이 사건에서 부보선박인 폴리호가 캐롤라이나에서 출항하기 약 10일전에 콜렛호가 도착했고, 콜렛호의 도착한 후 폴리호에 대한 상황이 보험계약에서 고지되지 않았다. 리 판사는 보험은 ‘상호신뢰와 신용’에 따라 체결되었고, ‘항해사업에 차이를 두는 것’을 의미하는 모든 중요한 사항을 고지할 의무가 존재한다고 판시했다. 리 판사는 고지의무를 좁게 이해할 것을 제시하면서 사기라고 하였지만, 배심원은 종국적으로 중요한 사항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1742년의 시맨 대 포네로사건에서는 고지하지 아니한 사항과 손해가 실제로 발생한 방법 사이에 인과관계를 요구할 필요가 없다고 하여 고지의무원칙을 발전시켰는데, 그 이유는 보험계약체결시점에서의 사항만이 고려되어야 하고 그 이후의 사고에 따라 판단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 고지되지 아니한 사항은 부보선박이 동반하는 선박과 소통이 단절되었고, 선박은 누수 중이었으며, 선박의 멸실은 어쨌든 발생했다는 것이다. 고지의무위반과 보험사고 사이의 인과관계의 부존재를 보험계약의 해지권 제한사유로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영국에서는 이를 인정하지 아니하는데 영국법의 이와 같은 원리는 이미 250년 전에 확립된 것을 알 수 있다.

고지의무제도가 확립된 획기적 판결로 일컬어지는 1766년 카터 대 보엠사건은 현재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섬의 벤투렌이 프랑스에 의하여 침략되어 훼손되는 경우에 대비한 보험이다. 보험계약 체결 시점인 1759년에 영국에서는 프랑스에 의한 수마트라섬의 공격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사항으로 보험자가 위험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판단하여 보험금지급을 명한 사건이었다. 판결의 250주년을 기념하여 국립 싱가프로대학교 한용컁 교수 주관으로 세미나가 개최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카터 대 보엠사건과 보험법상 계약체결 이전의 의무: 250년후 글로벌한 관점에서’라는 제목의 책이 영국 하트출판사에서 2018년 출간된 바 있다.

1800년대 초 나폴레옹의 프랑스혁명으로 부르주아 사회가 출현했다. 이로 인해 시민의 사적소유제도의 성장으로 보험종목도 기업보험에서 생명보험, 상해보험 등 가계보험으로 다변화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국에서는 보험사기계약의 무효를 규정한 1745년의 해상보험법, 보험사기를 방지하기 위하여 생명보험에서 피보험이익을 인정한 1774년의 생명보험법을 제외하고는 보험법이 제정되지 않았다. 보험계약의 성립에서 보험금지급에 이르는 보험계역법에 관한 성문법이 제정된 것은 1906년 해상보험법이었다. 이 법은 2500여개의 판례를 입법한 것으로 2012년 고지의무법, 2015년 보험법이 제정될 때까지 개정없이 해상보험 종목만이 아니라 일반보험에도 적용 또는 유추적용되어 왔다.

영국의 2012년 고지의무법은 가계보험에서 고지사항을 질문에 대한 답변의무로, 위반의 효과를 비율적 보상원칙으로 전환했다. 전자와 관련하여 고지제도는 위험을 측정하여 보험계약을 체결할지 여부와 보험료의 설정 등을 위한 것이기 때문에 무엇이 위험의 측정을 위하여 필요한 중요한 사실에 해당하는가는 많은 보험계약을 체결하여 다양한 정보를 보유하고 있는 보험자측이 판단하도록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전화나 인터넷에 의한 보험판매가 일반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보험계약자는 질문에 답변하는 형태로 인수절차가 진행되고, 추가적인 사실을 고지할 의사가 있더라도 이를 행하기가 어렵기 때문에 법적 의무로 하는 것은 형평에 맞지 않다는 것이다. 후자는 고의적 고지의무위반이거나 고지하였더라면 보험자가 보험계약을 인수하지 아니하였을 경우 계약을 해지할 수 있지만, 그 이외의 경우에는 전부전무식의 방식을 탈피하여 고지하였더라면 지급하였을 보험료와 실제보험료의 비율로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2015년 영국보험법은 기업보험에 관한 고지의무제도에 영국의 판례를 반영하여 공정한 제공의무로 전환하였다. 주요 내용은 고지의무를 보험계약자의 단독의무가 아닌 보험계약자와 보험자의 공동의무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는 원수보험자가 부보한 적하중 시계에 대하여 탁상시계로 표시하고 그 가액을 탁상시계로는 예견할 수 없는 고액이었는데, 실제로는 롤렉스시계 등 고가의 손목시계가 멸실된 사건에서 보험자가 고급품이 포함되어 있을 가능성에 대해 주의를 환기했는가를 묻지 않고 이 점에 관하여 아무런 질문을 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고지의무위반을 추궁할 수 없다는 보험계약자의 주장에 대한 논의를 반영한 것이다.

동법의 공정한 제공의무는 ‘보험계약자가 인식하거나 인식하여야 하는 모든 중요한 사항의 고지하여야 하고, 이를 충족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도 신중한 보험자가 인식하였다면 그 중요한 사항을 밝히고자 추가질문을 하기에 충분한 정보를 보험자에게 고지하는 경우에는 고지의무를 이행한 것으로 본다는 것’을 내용으로 한다.

정보화 사회의 진전에 따라 보험계약자가 제공한 정보에 대하여 인터넷정보 등에 의해 진위여부의 확인이 용이한 경우가 많아졌다. 영국의 고지의무제도는 현대사회의 변화에 대응하는 판례의 입장을 반영하여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중요한 보험원칙의 하나인 고지의무제도에 관한 영국법을 비롯한 선진국가의 동향을 이해하여 우리 보험법제를 현대화하는 것은 앞으로의 과제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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