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너무 취해 있었다
상태바
우리는 너무 취해 있었다
  • 방제일 kgn@kongje.or.kr
  • 승인 2022.05.06 10:2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2030보험라이프]

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방제일] 길고 길었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끝났다. 간만에 밤새도록 달리기로 작정하고 친구들을 만났다. 모임의 이름은 ‘취한 사람들이 모임’, 이른바 취사반이었다. 취사반 인원은 다섯 명이었다. 우리 다섯이 모인 술자리는 언제나 만취한 후 수많은 에피소드를 만든 채 막을 내리곤 했다.

그 날도 그랬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모였다. 그렇게 시작된 술자리는 예전 같지 않았다. 세상 모든 것이 그렇듯 취사반도 영원하지 않았다. 나이가 들기도 했고 각자의 사정으로 저마다의 장소로 흩어졌다.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니, 자연스럽게 그 마음도 멀어졌다. 특히나 사회적 거리두기로 다 같이 만난 게 오랜만이라 어쩐지 어색했다. 때때로 각개전투로 의기투합하기도 했지만 이제 예전처럼 다 같이 일정을 맞춰서 모이긴 더 이상 어려웠다.

심야 시간제한이 끝나고 정말 오래 간만에 취사반 어셈블이었지만 어벤저스같은 감동은 없었다. 부딪히는 한 잔, 한잔에 많은 상념을 불어넣으면 1차와 2차를 마쳤다. 이윽고 3차를 가야하는 시점에서 모두의 얼굴에 조금씩 초조한 기색이 있었다. 이 불편과 불안의 실체가 무엇일까.

그러다 한 녀석이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마시자.”

녀석이 그 말을 하자마자 모두들 기다렸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자리를 정리했다. 다들 자신들의 막차 시간을 알아보고 있었다. 다행히도 우리 모두 막차를 타고 집으로 갈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막차보다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비교적 온전한 정신과 기억을 가지고 갈 수 있다는 것이다.

간만에 타 본 막차의 풍경은 여전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만취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누구는 지하철 의자를 베개를 삼아 자고 있었고, 누군가는 자신이 바닥에 핸드폰을 떨어뜨린 지도 모른 채 기절해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여기 있는 누군가는 분명 내려야할 역을 이미 지나쳤을 것이다.

심야 시간제한이 없어지자마자 다들 경쟁하듯 만취해 있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너무나 서글프게 다가왔다. 우리는 왜 이렇게 취해야만 할까.

아니나 다를까 심야 제한이 없어진 다음 날 사건 사고가 그 전에 비해 두 배 이상 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음주, 대한민국에서 ‘술’ 이미 수많은 죄를 저질렀다. 사실 술은 잘못이 없었다. 사람이 잘못이었다. 사람들은 그 잘못을 술에게 돌렸다. 그래서 음주는 어느새 사회적 면죄부처럼 빈번히 사용됐다.

“술을 마셔서 기억이 나지 않는다.”

사람들은 음주를 핑계 삼았고, 볼모로 잡았다. 때론 음주를 무슨 보험인양 이용했다.

음주에 이렇게 관대했던 것은 비단 개인의 문제가 아닌 사회적인 문제였다. 한국 사회는 그동안 술에 너무나 관대했다. 매년 음주운전으로 약 250명에 달하는 무고한 이들이 목숨을 잃는다. (2019년 295명이었던 음주운전 사고 사망자 수는 2020년 287명, 2021년 206명으로 2년 새 30%나 줄었다. 그러나 교통안전공단이 발표한 통계에 따르면 여전히 하루 평견 약 48건에 달하는 음주운전이 일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술로 인해 많은 사회적 손실들이 발생한다. 심야 시간, 범죄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지켜야할 공권력은 음주한 이들로 인해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몸살을 앓고 있기도 하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이제 음주에 대한 시선은 과거와 달리 긍정적이지 않다.

지난해에는 음주운전 사고에 대한 처벌이 강화됐으며, 음주운전 사고를 낸 경우 가해자에게 보험금 전액을 구상할 수 있게 되기도 했다.

음주로 인한 사건에 대해 사회가 점차 강력하게 대처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강력한 처벌에도 과연 이 ‘술 권하는 사회’에서 실제로 효과가 있을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하지만 나는 이번 ‘사회적 거리두기’를 통해 그동안 내가 너무 취해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날, 집으로 오는 마지막까지 나는 거리에서 자신의 몸을 주체하지 못한 채 갈지자를 그리며 휘청이는 이들을 봤다.

저게 내 어제의 모습이자, 오늘의 모습이었을 수 있다. 어쩌면 아직 오지 미래의 모습일 것이다. 저렇게 몸도 제대로 소화하지도 못할 술을 몸속에 때려 박으며 나는 그동안 안전을 찾았고 행복한 미래를 꿈꿨다. 아주 우스운 농담이자, 위험한 현실이었다. 이제 깨달았다. 우리는 그동안 너무 취해 살았다 것을. ‘만취’라는 면죄부로 너무나 많은 잘못과 비용을 치러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나 또한 술을 마시면서 나는 수많은 것들을 피해를 입었다. 단순히 내가 냈던 술값들을 제외하고, 핸드폰을 잃어버리기도 했고, 취한 상태로 넘어져 발목에 깁스를 한 적이 있다.

술 권하는 사회는 오늘도 또다시 만취를 향해 달려갈 것이다. 그로 인해 수많은 비용이 증발할 것이며, 무고한 사람이 유명을 달리할 것이다.

이제는 이 만취의 악순환을 끊어야 하지 않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