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大)퇴직시대’, 조직문화 키워드가 ESG 언어로 부상한다
상태바
‘대(大)퇴직시대’, 조직문화 키워드가 ESG 언어로 부상한다
  • 김민석 마스턴투자운용 재직 / 성균관대 박사과정 listen-listen@nate.com
  • 승인 2022.02.10 10:0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민석의 ESG 오디세이]

[한국공제보험신문=김민석] 매년 초 전 세계의 경제인들이 주목하는 편지가 있다. 10조 달러, 한화로 무려 1경이 넘는 규모의 자산을 운용하는 세계 최대의 자산운용사 블랙록(BlackRock)의 래리 핑크(Larry Fink) 회장이 보내는 연례 서한이다.

10조 달러라고 하면 어느 정도 규모일까? 유럽의 경제 강국인 독일, 영국, 프랑스 세 국가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친 금액과 엇비슷하며, 미국과 중국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나라의 국내총생산보다도 큰 금액이다. 블랙록은 국내 증권시장에서도 큰손이다. 보유한 상장사 시가총액 기준으로 국민연금공단, 삼성물산, 삼성생명에 이은 네 번째다. 래리 핑크가 매년 발신하는 메시지의 무게감이 남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이번 서한에서도 그는 지속가능성을 테마로 여러 화두를 던졌다. 특히 그는 지속가능성에 집중하는 것이 블랙록 구성원들이 환경주의자이기 때문이 아니라, 자본주의자(자본가)이자 고객의 수탁자이기 때문임을 강조했다. 이번 서한의 제목인 ‘자본주의의 힘(The Power of Capitalism)’이 어떤 맥락에서 운위된 것인지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자본주의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stakeholder capitalism)의 속성을 배태한다. 실지로 몇 년 전 고인이 된 린 스타우트(Lynn Stout) 코넬대 로스쿨 교수는 “주주 최우선주의가 실제로 기업의 더 좋은 성과로 나타난다는 믿을 만한 결과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말했고, 리베카 헨더슨(Rebecca Henderson) 하버드 경영대학원 교수는 주주자본주의의 시효가 끝이 났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전년도 서한과 비교했을 때 특히 눈에 띄었던 내용은 고용주와 직원의 관계 변화에 대한 서술이었다. 물론 2021년 연례 서한에서도 직원과 인재 전략(talent strategy)에 대한 언급이 있었지만, 이해관계자와의 긴밀한 관계가 긴요하다는 큰 주제 안에 포함되었던 여러 키워드 중 하나였다.

하지만 이번 서한에서 래리 핑크는 일의 새로운 세계가 열렸다며, 팬데믹이 고용주와 직원 간의 관계를 완전히 바꿔놓았다고 말했다. 미국과 영국의 퇴사율은 폭발적으로 상승하고 있으며, 미국 내 임금 수준이 수십 년 만의 가파른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미국 노동통계국의 채용 및 노동회전율 조사(JOLTS, Job Openings and Labor Turnover Summary)에 따르면, 2021년 11월 미국의 자발적 퇴직자는 무려 453만명에 달하며 퇴직률은 3.0%이다. 퇴직자 수는 통계 작성을 처음으로 시작한 2000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이고, 퇴직률 또한 역대 최고 타이기록이다. (지난 2월 1일 발표된 2021년 12월 퇴직자 수는 약 430만명으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높은 수준임을 부인할 수 없다.)

‘대공황(the Great Depression)’을 빗대 앤서니 클로츠(Anthony Klotz) 텍사스 A&M 대학 교수가 고안한 ‘대(大)퇴직(the Great Resignation)’이라는 신조어가 입길에 오르내리고 있다. 주 5일 출근, 임직원의 정신건강을 경시했던 것, 저소득층 및 중산층의 임금 정체 등 이전에는 익숙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장면에 대해 래리 핑크는 다음과 같이 일갈한다. “그런 세상은 사라졌다(That world is gone)!”

회사에 대한 직원들의 복지, 보상, 정서, 동기부여, 안정성 등에 대한 요구는 점차 증대할 것이다. 일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불가피하다. 미국 경제전문매체 CNBC는 지난달 미국인에게 가장 중요한 ESG 이슈는 기후변화가 아닌 노동자 문제가 될 것이라고 보도했다. ‘친환경 행동주의’를 기치로 삼고 있는 헤지펀드 엔진넘버원(Engine No.1)은 앞으로 노동 문제에도 힘을 쏟을 것임을 예고하기도 했다.

워라밸(work-life balance), 임직원 복지, 공정한 성과 분배, 다양한 배경을 지닌 직원들 간의 유대감 형성, 유연근무제, 창의력을 증진하는 기업문화 조성, 임직원 정신건강에 대한 관심, 더 나아가서 최근 정치권에서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는 주 4일제까지. 이런 표제가 조직문화 측면이나 인사관리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ESG의 주요 키워드로 부상했다.

한국에서 ESG 논의는 지나치게 E(환경)에 편중된 감이 있다. 대퇴직 시대에 우리의 시야는 보다 확장되어야 한다. 높은 퇴사율은 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이어지고, 기업의 생산성과 노하우, 조직문화에 부정적으로 기능한다.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금융 거인 블랙록은 질문을 던진다. 새로운 근무 환경과 업무 방식의 변화에 발맞춰 어떤 준비를 하고 있냐고. 자신 있게 답변할 수 있는 기업이 많아지길 바란다.

김민석

대체투자 전문 자산운용사에 재직 중입니다. MBA 졸업 후 공적 가치와 ESG에 대해서 더 공부하기 위해 박사과정에 재학 중이기도 한 ‘퇴튜던트’입니다. 몇 권의 책을 썼으며, 대통령 직속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으로도 활동 중입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