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을 해결하는 보험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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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남불을 해결하는 보험 모델
  • 류근옥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klew@seoultech.ac.kr
  • 승인 2022.02.07 09:5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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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보험신문=류근옥 교수] 요즘 식사 모임 등에서 대화 내용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강남 사는지 강북 사는지를 알 수 있다고 한다. 사람들은 자기의 현재 입장과 이해관계에 따라서 정부 정책을 비난하기도 하고 반대로 칭찬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사람들의 생각과 주장은 때때로 내로남불 즉 아전인수(我田引水)인 경우가 많다.

근자에 부동산 가격이 폭등하고 인플레이션이 심해지자 한국은행은 기준금리를 인상하기 시작했다. 당연한 조치이다. 물가가 오르면 금리를 올려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경제학의 기반 상식이다. 그러나 한국은행의 금리 인상을 놓고 잘한다는 사람과 잘못한다는 사람으로 나뉜다. 세부적으로 서로의 입장과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이다. 금리 인상에 불만을 터트리는 사람들은 작년 혹은 재작년에 영끌로 많은 대출을 받아 집을 산 가정이다. 집값이 크게 올라 이들 대부분은 수억 원씩 부가 늘어났다. 그런데도 이자 부담이 좀 늘어나니 경제 전체가 어떻게 되든 금리 인상을 반대한다. 반대로 금리 인상에 찬성하는 사람은 아직 집이 없는 무주택자인 경우가 많다. 금리 인상으로 너무 오른 집값이 좀 내려가야 내 집 마련의 꿈이라도 꾸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양자 모두 자기의 처지에서 이기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일종의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문제는 자기 처지가 바뀌면 주장도 180도 달라지는 내로남불이다.

고전 경제학의 기본 가정은 인간은 이기적이고 본능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애덤 스미스의 주장처럼 밀 농사를 짓는 농부나 밀가루 만드는 제분업자나 밀가루를 사다 빵을 만들어 파는 제과점이나 다 남을 생각해서 좋은 밀가루나 맛있는 빵을 만드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모두 이기적이고 경쟁 속에 자기 이익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기 때문에 우리 식탁에는 질 좋고 저렴한 빵이 올라오는 것이다. 그래서 인간이나 동물이나 모두 <이기적 유전자> 때문에 진화하고 발전한다고 볼 수 있다.

내로남불도 우리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본능적 행동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그 위대한 다윗(David) 왕마저도 내로남불의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기름을 부어 왕으로 세워준 이스라엘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였다. 소년 시절에는 적장 골리앗을 돌팔매로 물리친 용감한 영웅이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의 몸으로 오실 때에 바로 다윗의 혈통을 따라 태어나셨다. 그러나 다윗왕은 전쟁에 나간 그의 부하 장수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가 어느 달밤에 목욕하는 것을 발견하고 욕망에 이끌려 그녀를 데리다 불륜을 저지른다. 밧세바가 임신하였다는 소식을 듣자 다윗은 우리아를 치열한 전쟁터로 배치하여 결국 죽게 만든다. 이때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나타나 양을 많이 가진 부자와 단 한 마리밖에 없는 가난한 자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어느 날 그 부자에게 귀한 손님이 찾아왔다. 부자는 자기 양들은 그냥 두고 가난한 자의 양 한 마리를 빼앗아 융성이 자기 손님을 대접하였다. 이 이야기를 들은 다윗 왕은 매우 진노하여 그 부자가 어떤 놈인진 몰라도 당장 잡아다가 정의의 칼로 처단하라고 하였다. 그러자 나단 선지자는 그 부자가 바로 부하 장군의 아내를 범하고 장군을 죽게 한 당신이라고 힐난하였다. 이것이 다윗 왕의 내로남불이다.

인간은 이기적이고 내로남불이기 때문에 정부의 정책이나 제도는 물론 기업의 상품 혹은 서비스 개발도 이를 기본 전제로 깔아야 한다. 특히 한국 정치에서 상대편은 모두 적폐이고 나는 의롭다고 주장하며 칼을 휘두르는 사람은 다윗 왕의 내로남불을 기억해 볼 필요가 있다. 보험경영도 마찬가지이다. 우리 보험회사는 정직하게 보험금을 잘 주는데 보험계약자들의 보험사기가 문제야 하는 생각도 내로남불이다.

보험이 나쁜 이미지에서 벗어나 고객의 신뢰를 확보하면 대박일 텐데! 이러한 생각을 한 사람이 대니얼 슈라이버(Daniel Schreiber)이다. 슈라이버는 2016년 금융과 기회의 도시 뉴욕에서 레모네이드(Lemonade)라는 첨단 기술(high-tech) 기반의 보험사를 창업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보험사와는 달리 첨단 인공지능(AI) 기술과 심리학 기반의 행동경제학을 토대로 보험경영의 새로운 역사를 쓰고 싶었다.

그는 보험에 대한 불신의 배경이 보험료 수입에서 되도록 보험금을 적게 줌으로써 이익을 더 창출하려는 보험회사의 경영 구조에 있다고 보았다. 보험금을 적게 주면 손해율 즉 수입보험료에서 보험금 지급액이 차지하는 비율이 낮아지고 그 결과 보험사는 더 많은 영업이익을 창출한다. 보험회사의 이윤은 구조적으로 고객들에게 얼마나 보험금을 덜 지급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는 일종의 제로섬(zero-sum) 게임이다. 보험사와 고객 사이의 제로섬 게임 구조하에서 보험에 대한 신뢰와 이미지가 개선되기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사람이 슈라이버이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본능과 행동의 동인(incentive)을 심리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경영모델을 설계하면 그 모델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고객들은 거대한 기업인 보험사에 보험금을 청구할 때 되도록 많은 돈을 받아내고자 피해를 부풀리는 동인이 자연스럽게 발동한다는 것이다. 미국에서 보험사기를 저지른 사람의 90%가 정상적이고 멀쩡한 시민들이라고 한다. 심지어 미국 시민 중 25%는 사고를 좀 부풀려 보험회사에서 더 많은 돈을 받아내는 것이 뭐 그리 나쁘냐고 대 놓고 얘기한다. 그러면서도 그들 대부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자선단체 기부금이나 무료 급식소 등의 운영에서 돈을 고의로 빼 가는 것이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사람은 게임의 상황과 상대에 따라 선하게 행동할 때도 있고 악하게 행동할 때도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슈라이버는 보험사와 고객 두 당사자 사이의 제로섬 게임을 보험사-고객-자선단체 사이의 3자 게임으로 바꾸어줌으로써 서로 도움(win-win)이 되는 게임 구조를 생각하였다. 다시 말해 보험사가 고객의 희생을 바탕으로 이익을 챙기려는 유혹에 빠지지 않고 대신 고객의 이익을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 불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선결과제라고 슈라이버는 생각하였다.

그러면 슈라이버의 새로운 보험 모델은 구체적으로 무엇이었을까? 그는 보험사와 계약자 사이에 수입보험료를 가져가는 비율을 미리 확정적으로 나누는 것을 생각하였다. 레모네이드의 경우에는 수입보험료 중 25%를 보험사의 사업비로 배정한다. 미국 보험산업의 평균 사업 비율이 30%인데 그보다 약간 낮은 비율로 책정한 것이다. 25%의 보험사 몫에서 경영합리화와 절약을 통하여 실제 사업비를 줄이면 줄일수록 보험사의 이윤은 커진다. 그 나머지 75%는 피보험자들에게 보험금을 지급하기 위하여 배정한다. 일반 보험사와는 달리 레모네이드는 이 부분에서는 결코 이윤을 내지 않는다. 그래서 보험금을 더 주냐 덜 주냐를 놓고 보험사와 보험계약자 사이에 줄다리기할 이유가 근본적으로 없어진다. 왜냐하면, 보험금을 지급하고도 돈이 남으면 보험사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보험계약자들이 사전에 지정한 단체의 자선사업에 기부하기 때문이다. 보험계약자들도 보험금 지급 후 남은 돈이 있으면 이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계약자의 이름으로 기부하면 대부분 커다란 긍지와 보람을 느낀다. 슈라이버의 자선(giveback) 모델에 기초한 보험경영은 2019년 타임스지가 선정한 100대 최고의 발명 아이디어 중에 하나로 소개되었다. 이것이 내로남불을 극복하는 보험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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