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로만 ‘코로나 영웅’, 간호사들이 떠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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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로만 ‘코로나 영웅’, 간호사들이 떠나간다
  • 이광호 기자 leegwangho@kongje.or.kr
  • 승인 2022.01.19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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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진자 늘어나도 현장 간호사 수는 제자리
인력난에 주 100시간 초과근무, 코로나 감염되기도
출구 없는 ‘희생’에 번아웃, 간호사 사퇴 러시
간호인공제회 설립해 안전망 구축, 정당한 대가 제공해야

# 중환자실에서 일하는 간호사 A는 얼마 전 코로나19에 감염됐다. 코로나에 걸린 치매 환자가 갑자기 보호복을 잡아당겨 옷이 찢어지고 바이러스에 노출된 것이다. 그는 감염 직후 격리돼 동료들이 근무시간을 늘려야만 했다.

# 보건소 간호사 B에게 8시간 근무, 1시간 휴식은 먼 나라 이야기다. 선별진료소에서 검체 채취, 역학조사, 백신 접종, 폐기물처리 등을 하다 보면 매일 야근은 기본이고 월 100시간 이상의 초과근무도 다반사다. 방호복을 입고 근무하면 2시간 일하고 1시간 휴식이 원칙이지만 인력부족으로 3~4시간씩 일하는 경우도 많다. 간신히 버티고 있지만 몸과 마음이 모두 소진돼 그만둬야 할지 고민이다.

[한국공제보험신문=이광호 기자] 코로나19 장기화로 의료체계 붕괴가 현실화되고 있다. 병상부족, 의료인력 부족은 물론 과중한 업무량과 누적된 스트레스에 번아웃을 호소하거나, 사표를 쓰고 의료계를 떠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다. 문제는 이런 상황이 더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전문 교육이 필요한 의료인력은 하루아침에 충원하기 어렵고, 코로나19는 당분간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이런 가운데 대안으로 의료인에 대한 처우개선 목소리가 나온다. 현장에서 요구하는 인력 충원은 쉽지 않으니, 반대급부로 현실적인 보상과 복지를 늘려주자는 이야기다. 코로나19 감염 위험에 노출된 의료인을 위해 ‘감염병 보험’을 제공하고, 간호인공제회를 만들어 번아웃에 대한 심리상담 등 적절한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코로나 3년차,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의료진

2020년 1월 20일 국내에서 첫 코로나19 확진자가 나온 지 만 2년이 됐다. 백신과 치료제가 도입됐지만 오미크론 등 변이 확산으로 암울한 소식만 들려온다.

특히 코로나 장기화로 의료현장은 한계에 다다랐다. ‘위드 코로나’ 전환 이후 위중증 환자가 매일 수백명씩 발생하며 의료진에게 과도한 업무량이 주어지고, 의료진들은 감염되지 않기 위해 답답한 방호복을 입고 중증환자 치료에 나서야 한다.

감염병 특성상 환자 배식과 화장실 청소, 소독뿐 아니라 폐기물 관리까지 모두 의료진이 도맡고 있다. 게다가 이런 상황이 언제 끝날지 기약조차 없어 피로감과 우울감, 번아웃을 호소하거나, 퇴사를 선택하는 경우도 늘고 있다. 인천 부평의 한 보건소 근무자는 코로나19 대응 때문에 월 110시간 넘는 초과근무를 하다 과로사하기도 했다.

대한의사협회 조사에 따르면, 의사 40% 이상이 코로나19로 인한 번아웃 증상을 경험했다. 특히 전공의는 60% 이상이 번아웃 증상을 겪었다.

보건의료노조가 지난 8월 보건의료인력 4만3058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이 같은 문제가 드러난다. 전체 응답자의 78.7%가 코로나19 이후 자신의 일상생활이 ‘나빠졌다’고 답했고, 심리상태 역시 70.6%가 ‘나빠졌다’고 응답했다. 또한 응답자의 90%는 ‘감염성 질환에 대한 우려’가 심각하며, 코로나19 이후 ‘사고성 질환’과 ‘정신 질환’에 대한 우려도 60%가 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의료진이 번아웃을 호소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인력부족이다. 환자가 급증하면서 의료인들이 더 필요한데, 전문 교육을 받은 의료인력의 단시간 내 충원은 어려우니, 기존 의료진이 늘어난 업무를 떠안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

게다가 이 문제는 하루아침에 해결하기 어렵다. 코로나19 대유행은 감염병의 전파기간이 길고 현재진행 중이기 때문에 감염병에 대응하는 의료종사자의 무력감을 더 키우고 있다.

실제로 국립대병원 신규 간호사 절반 이상이 과중한 업무량을 못견디고 2년 이내 퇴사한 것으로 나타났다. 서동용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와 각 국립대학병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2년 내 퇴사자의 비율은 2019년 53.4%, 2020년 54.5%, 2021년 54.5%였다.

전국 국립대병원의 간호직은 2019년부터 2021년까지 정원을 채운 적이 없다. 2019년에는 정원대비 현원이 376명이 부족했고, 2020년에는 239명, 올해 2021년에도 276명이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달 감염병 전담 병원으로 지정된 경기도와 서울의 민간 병원에서는 지정 직후 간호 인력 40%가량이 퇴사 의사를 밝혀 충격을 줬다. 감염병 현장에 근무하는 것이 의료진에게 얼마나 큰 스트레스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의료진들이 업무 중 감염되는 경우도 증가하는 추세다. 최연숙 국민의당 의원실이 중앙방역대책본부로부터 받은 ‘의료인력 코로나19 감염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1년 7월 6일 기준 977명이던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간호사 확진자 수는 2021년 10월 5일 0시 기준 1861명으로 집계돼 3개월 사이에 884명 늘었다.

감염병으로부터 국민의 생명을 지켜야 할 의료진의 중요성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그렇다고 마냥 ‘희생’만 강요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의료계의 숨통을 틔울 수 있는 특단의 대책과 함께 그동안 헌신해온 의료진에게 합당한 보상과 처우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무조건적인 헌신 강요는 그만, 합당한 보상 제공해야  

의료진의 부담을 줄이는 근본적인 해결책은 인력 충원이다. 그러나 당장은 뚜렷한 해법이 없는 만큼 의료인 처우를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의료 중 감염에 대비한 ‘감염병 보험 가입’을 비롯해 지금보다 현실적인 보상을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우선 감염병 보험이 시급하다. 한국은 코로나19로부터 의료진을 보호해줄 보험이 전무하다. 코로나바이러스와 관련된 보험이 존재하기는 하나 부작용에 한해 보상하는 수준이다.

반면 일본은 의료, 복지관련 종사자를 위한 감염병 보험이 있다. ‘메디컬 감염증 보험’이 대표적이다. 이 보험은 코로나19를 포함해 인플루엔자, 감염성 위장염 등 다양한 전염병을 보장한다. 의료인이나 복지관련 종사자가 가입할 수 있으며 연간 보험료는 1030엔(한화 약 11,000원)이다. 메디컬 감염증 보험은 입원, 통원시가 아닌 자가격리시에도 최대 10만엔(한화 약 100만원)을 지불한다.

중국의 위슈어(WeSure)사는 AXA, DingXiangYuan와 함께 2020년 1월 말 의료진들에게 무상으로 보장하는 코로나19 보장상품을 출시했다. 이 상품은 코로나19 관련하여 60만 위안(한화 약1억 1,267만)까지 보장한다.

이와 함께 간호인 공제회 설립도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공제회를 설립하면 여러 장점이 있다. 우선 간호사를 회원으로 하는 공제를 조직하고 이를 통해 배상책임보험을 수요자의 니즈(needs)에 맞게 설계할 수 있다.

현재 손해보험사의 전문인배상책임보험이 있지만, 보험료가 비싸고 보장범위도 제한적이다. 그러나 공제회는 근무 중의 감염이나 부상은 물론 번아웃에 대한 정신과 치료비, 환자와의 소송 비용 지원, 연금저축상품 운용 등 다양한 공제보험을 추진할 수 있다.

송금희 보건의료노조 사무처장은 “환자를 옮기다 허리를 다쳐도 디스크 등의 질병은 만성 질환으로 보기 때문에 직무상 요양 승인 신청이 부결되는 경우가 많은데, 공제회가 생기면 이런 부분에 도움이 될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마다 의료진에 대한 산재보험을 가입하고 있으나, 업무 연관성을 입증하기 어려운데, 공제상품으로 이런 위험을 커버할 수 있다는 의견이다.

실제로 일본의 간호학교 협의회 공제회는 ‘Willnext’를 운영해 간호 업무중의 대인, 대물 사고는 물론 환자의 클레임이나 트러블로 인한 변호사 상담 비용 등을 보장한다. 인플루엔자 등으로 인한 감염도 보장된다. 일본 간호학교 협의회 공제회는 1998년에 설립되어 간호, 의료, 복지계의 약 27만명의 회원에게 보상제도 및 안전 대책 등의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공제회 설립에 대한 현장의 반응도 호의적이다. 대한간호협회 관계자는 “간호공제회가 설립되면 병원이나 보건소 등에서 재직 중이거나 재직하였던 간호인력들에 대한 효율적인 공제제도가 확립될 것”이라면서 “간호인력의 생활 안정을 확보하고 복리를 증진할 뿐 아니라 사기 증진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언제까지 간호사에게 ‘영웅’이라며 ‘힘내 달라’고 희생만을 강조할 것인지 되묻고 싶다”며 인력 확충 및 간호인력 안전망 구축이 시급함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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