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 라이더의 죽음, 그리고 공제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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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 라이더의 죽음, 그리고 공제조합
  • 고라니 88three@gmail.com
  • 승인 2022.01.17 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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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보험료에 무보험 쌩쌩, 사각지대 놓인 라이더들의 사회안전망으로 자리잡길
[2030보험라이프]

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보험신문=고라니] 회사에 민원인이 찾아왔는데 아무리 조회해도 고객 정보가 나오지 않았다. 알고 보니 본인이 아니라 얼마 전 사망한 아들 대신 업무를 처리하러 왔다고 한다. 20대 중반에 불과했던 아들은 배달 오토바이 라이더로 일하다 교통사고로 세상을 떴다고 했다.

순간 가슴이 먹먹해졌다. 주제넘게 안타까운 마음을 전하면 어설픈 위로로 느껴질까 두려워 평소보다 더 사무적으로 업무처리를 도와드렸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표정은 생각보다 담담해 보였다. 그 담담함의 수위를 유지하려 얼마나 많은 감정을 토해냈을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배달업계는 급성장했다. 전업 라이더도 많아졌지만, 단기성으로 계약을 맺고 본업과 라이더를 병행하는 긱워커(Gig Worker) 역시 늘었다. 나 역시 빠듯한 월급이 아쉬워 배민커넥터를 기웃거린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배부른 고민이었다는 죄책감이 든다. 어떤 이들은 목숨을 걸고 밤거리를 달리고 있으니 말이다.

고용노동부가 지난달 발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배달 중 교통사고를 경험한 라이더 비율은 47%에 달하며, 1명당 평균 2.4회의 사고를 경험했다고 한다. 특히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오토바이 운전이 얼마나 위험할지는 타보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도 보험 가입률은 현저히 떨어진다. 감사원은 2020년 유상운송용 이륜차 보험에 가입한 라이더는 11.8%에 불과하다고 발표했다. 나머지 88.2%의 라이더들은 사고가 나면 제3자에 대한 민형사상 책임은 물론, 본인 치료비와 수리비까지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는 처지다.

보험가입률이 떨어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보험료가 비싸기 때문이다. 라이더유니온에 따르면 20대 라이더의 연간 책임보험료는 500만원에 달하며, 종합보험료는 1000만원을 넘는다. 고용 안정성이 보장되지 않고 경쟁이 날로 심해지는 배달업계 라이더들이 쉽게 감당하기 어려운 금액이다.

이런 상황을 타개할 방법으로 공제조합 설립이 논의되고 있다는 기사가 눈에 띄었다. 정부와 배달플랫폼 사업자, 라이더들이 기금을 조성하고,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일정 금액을 지급함으로써 보험사의 역할을 대신하자는 것이었다.

한국노총은 지난해 한국플랫폼프리랜서노동공제회를 설립해 생활안전자금 대출, 목돈마련 사업 등을 시행 중이며, 국토교통부는 연구용역을 비롯해 소화물배송 공제조합 설립을 위한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공제조합을 통해 라이더들이 영업용 오토바이 보험 혜택을 보다 저렴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주요 골자다.

라이더에 대해 비호의적인 시선이 많은 건 사실이다. 운전이나 보행 중 신호를 무시하고 난폭하게 운전하는 라이더로 인해 간담이 서늘했던 경험 때문이다. 그러나 배달서비스 대중화가 코로나19 시대에 우리 삶에 가져다준 혜택을 고려하면 라이더들의 사회적 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은 결국 우리 모두를 위한 길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부디 충분한 논의를 거친 후 공제조합 설립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라이더들이 보다 안전하고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돕는 기구로 자리 잡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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