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게임’과 새로운 연금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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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과 새로운 연금보험
  • 류근옥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klew@seoultech.ac.kr
  • 승인 2021.11.22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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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신문=류근옥 교수] 요즘 ‘오징어 게임’을 모르면 모임에 나가 대화에 끼기도 어렵다. 오징어 게임은 황동혁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드라마로 올해 9월에 공개된 후 국내외 관람자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456명의 사람이 456억 원의 상금이 걸린 생존과 죽음의 게임에 초대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게임 참가자들은 주식 투자를 하다 쫄딱 망한 사람, 빚쟁이에게 혹독하게 시달리는 사람 등 세상 삶이 너무 고달파서 이를 탈출하기 위해 절박하게 돈이 필요한 사람들이다. 각 게임에서 탈락한 사람은 진행 요원들에 의해 현장에서 무참히 사살되기 때문에 목숨을 건 살벌한 게임이다. 그러나 여러 차례의 게임이 진행되면서 남은 생존자 수는 점점 줄어들고 생존자 한 사람당 돌아가는 상금은 눈덩이처럼 커지기 때문에 참가자들이 중도에 게임을 포기하기도 쉽지 않다. 이 드라마에서처럼 참가자들이 중간에 다 죽고 혼자 마지막 게임에서 살아남으면 456억원이라는 거금이 그 한 사람에게 다 돌아간다. 승자 독식의 대박 게임이다.

1653년 프랑스에서는 톤틴(Tontine)이라는 신기한 투자상품이 등장했다. 이 상품의 창안자는 당시 이탈리아 출신의 은행가 ‘로렌조 드 톤티(Lorenzo de Tonti)’였다. 그의 이름을 따서 상품 이름도 톤틴이라고 불렀다. 이 금융상품은 참가자들이 낸 투자금을 모아 기금을 만들고 여기에서 나온 이자 수익금으로 생존자들에게 매년 배당금을 지급한다. 기금조성 초기에는 생존 투자가의 수가 많으므로 배당 수익이 크지 않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사망자 수가 늘어나고 생존자 수가 적어지면 생존자 한 명에게 돌아가는 배당 수익금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결국, 나중에 마지막 남은 생존자 한 명이 그 기금에 들어 있는 원금과 이자를 모두 다 가져가고 기금운용은 종결된다. ‘오징어 게임’과 너무 유사하다!

오징어 게임에서처럼 톤틴 상품에서도 그 돈을 다 차지하려면 끝까지 살아남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그래서 참가자들은 운동을 열심히 하면서 건강 관리를 잘해야 한다. 술 담배는 당연히 끊어야 하고 음식도 탐하지 말고 절제하여야 한다. 피나는 노력으로 게임에서 살아남아야 많은 수익금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인간의 수명은 재천(在天)이라고 건강 관리를 아무리 잘해도 수명이 짧은 사람은 어쩔 수 없다. 그래서 이 톤틴이 처음 등장하였을 때 프랑스 파리 의회는 이 상품의 판매를 거부했다. 복권 등 도박이나 진배없다고 판단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톤틴은 복권과는 다르다. 복권의 참가자들이 다 같이 돈을 내는 것(복권 사는 것)은 톤틴과 같지만, 복권의 1등 당첨자는 인간의 노력이 아니라 순전히 운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서 상품허가를 못 받은 톤틴은 잠을 자고 있다가 이웃 나라 네덜란드에서 관심을 보이면서 부활한다. 마침내 1670년 캄펜(Kampen)이라는 시를 선두로 네덜란드의 여러 도시에서 톤틴을 투자상품으로 인정하여 새로운 연금으로 활용했다. 톤틴은 생존자들에게 정기적으로 배당을 주므로 노후 생활비 마련에 적합한 연금 상품이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1689년 프랑스에서도 루이 14세가 전쟁 수행에 필요한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왕실이 직접 톤틴 기금을 모아 운영했다. 루이 14세가 관리하던 톤틴의 마지막 생존자는 샬럿 바비어(Charlotte Barbier)라는 과부였다. 그녀는 무려 96세까지 살았다. 참가자 한 명당 처음 투자금은 300 리브르 정도였는데 그녀는 점점 늘어나는 배당 수익의 혜택을 누리다가 마지막 혼자 살아남았을 때는 한 번에 73,000 리브르나 되는 거금을 받았다. 당시에는 수명 통계표가 제대로 작성되지 않아 남녀 간 수명 차이도 잘 몰랐고 성별의 구분 없이 참가자를 모집하다 보니 게임이 공정하지도 못했다. 그야말로 단순한 오징어 게임이었다. 그 후 영국에서도 프랑스와의 전쟁 자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1789년부터 정부가 여러 차례의 톤틴 상품을 만들어 판매했다. 톤틴은 19세기 말까지 유럽의 여러 나라와 미국에서 빈번히 활용됐다. 그러나 프랑스 등 일부 나라들이 부실한 왕실 재정을 메꾸는 수단으로 톤틴을 악용해 참가자들의 피해도 속출했다.

톤틴은 그 후 호텔이나 교량 건설 등에서도 활용됐다. 대표적인 예가 1773년 런던 서쪽의 탬스 강에 건설된 리치먼드 대교이다. 영국 의회는 런던시가 톤틴을 이용하여 건설자금을 조달하도록 승인했다. 리치먼드 대교는 1777년 완공되었으며 통행요금 수입은 톤틴에 참가한 투자가 중 생존자들에게 매년 배분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사망자 수가 늘어나자 남은 생존자들은 더 큰 배당 수익을 받았다. 마지막 생존자 한 명은 그가 죽을 때까지 이 대교에서 들어오는 통행요금 수입 전부를 가져갔다. 정말 대박이었다. 리치먼드 대교의 요금소는 마지막 생존자가 사망하였을 때 같이 허물어졌다. 이제는 리치먼드 대교가 통행료 없이 누구나 자유롭게 다니는 다리가 됐다.

오늘날 어느 나라에서나 국민의 수명이 길어지고 노후 생활을 위한 은퇴 소득 마련이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그래서 프랑스 등 유럽의 나라들은 최근에 공식적으로 톤틴을 연금보험 상품으로 허가해 주고 있다. 특히 2019년에는 유럽의 보험사들이 연금 형태로 톤틴을 발행하여 판매할 수 있도록 범유럽 퇴직연금 규정(Pan-European Pension Regulation)을 통과시켰고 이에 27개의 EU 회원국이 동참했다. 게다가 2017년 3월 미국의 저명한 일간지 뉴욕 타임스지도 현대인들이 은퇴 후 소득을 준비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톤틴이 참신한 고려의 대상이라고 보도했다. 이제 우리나라에서도 ‘오징어 게임’ 얘기만 하고 말 것이 아니라 이에 숨어 있는 아이디어를 찾아서 새로운 연금보험 상품을 창안해 보는 것은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든다. 톤틴에 기반한 새로운 보험 상품의 개발과 판매 허용에 대한 전제 조건은 소비자의 권익 보호와 게임 참가자 사이의 공정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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