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하되 죽이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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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하되 죽이지 마라
  • 다면 dumber421@nate.com
  • 승인 2021.11.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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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보험라이프]

한국공제신문이 ‘2030보험라이프’ 시리즈를 시작합니다. 2030세대의 보험·공제에 대한 솔직한 생각과 에피소드를 공유하고, 실생활에서 진짜 필요한 보험 및 제도는 무엇인지 함께 고민합니다.   

[한국공제신문=다면] 족발 골목에서 신기한 광경을 목격한 적이 있다. 분명히 주문을 이쪽 가게에서 했는데 거스름돈을 반대편 사장님이 준다. 이게 무슨 일인가. 대충 눈치를 보아하니 사장님들끼리 서로 아는 관계라 거스름돈이 부족하면 다른 가게에서 내주는 듯했다.

시장의 규모가 커질수록 파이는 커진다. 그러므로 포화상태에 이를 정도가 아니라면 동종 업계의 사업이 확장되는 건 서로에게 좋은 일이다. 족발을 먹겠다고 집에서 한 시간 넘게 걸리는 가게까지 찾아간 것도 족발 하면 떠오르는 골목이 거기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내가 들어갔던 가게와, 거스름돈을 대신 준 가게는 경쟁자인 동시에 동업자인 셈이다.

상품을 구매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경쟁이 있는 게 유리하다. 그래야 상품 가격도 합리적인 수준을 유지하고 상품의 질은 높아진다. 음식점이라면 맛이나 서비스, 메뉴 다양화 등 자신만의 강점을 만들어 승부하려 할 테니 고객 입장에서 선택지도 많아진다. 내가 음료수를 준다는 가게 사이에서 막국수를 주겠다는 가게를 보고 냉큼 들어간 것처럼 말이다.

반면 판매자 입장에서는 파이가 줄어들지 않는다면 경쟁자가 줄어들수록 수익이 높아진다. 골목 하나를 두고 경쟁 중인 저 가게가 망해야 내가 그 손님들을 흡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우리에겐 암묵적 규칙이 하나 있다. 경쟁하되 죽이지는 않는 것이다. 그래서 노골적으로 다른 가게의 손님을 빼앗거나 해를 끼치는 행동은 되도록 피한다.

하지만 코로나와 신자유주의의 조합으로 부의 격차가 유례없이 커지면서 알아서 살아남으라는 구호는 당위가 되어버렸다. 부호들의 자산이 억 단위로 늘어날 때 소상공인들은 거리두기로 생존의 위기를 겪고 있다. 자영업자 내에도 격차가 발생한다. 자금이 없어 폐업조차 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이 생겨날 때, 비대면과 디지털에 적응한 곳은 코로나 이후 오히려 수익이 늘어나기도 했다. 하지만 위기 극복이라는 명분 아래 희생을 정당화하다 보면 우리 사회는 회복 불가능한 치명상을 입게 될지도 모른다. <오징어 게임> 속 오일남의 “이러다가는 다 죽어!”라는 외침처럼 말이다.

우리는 소비자인 동시에 노동자이다. 경쟁자인 동시에 동업자이기도 하다. 단절된 듯하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누군가의 위기가 공동의 위기가 되기도 한다. 정부가 공적자금을 투입해 특정 산업을 지원하는 것도 해당 산업에 가해진 충격이 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협동조합법 제115조에 따라 노란우산공제 사업을 진행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최근에는 코로나라는 특수상황을 고려해 노란우산 공제부금을 국고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거나 집합금지, 영업제한으로 인한 손실을 보상하는 법률도 검토되고 있다 한다.

특정 산업군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공제회에 공적 자금이 투입된다고 하니 거부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공제회가 투자를 잘못하거나 기금 운용에 실패해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는데 세금을 지원하니 말이다. 실제로 얼마 전 군인공제회의 투자 부실 논란이 국정감사와 함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물론 자산 운용 실패의 책임은 공제회에게 있다. 손해도 조합원이 지는 것이 맞다. 하지만 책임을 묻더라도 판이 깨서는 안 된다. 그래야 다음 게임을 진행해 볼 수 있다.

물론 오일남은 게임의 설계자였고, 다음 라운드를 즐기기 위해 즉, 사람들을 죽이는 게임을 하기 위해 “제발 그만 해!”를 외쳤다. 그럼에도 우리는 현실에 살고 있으므로 경쟁하되 죽이지 말라는 최소한의 원칙은 유효하다. 경쟁은 혼자 살아남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좋은 결과를 만들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일이다. 공제회가 투자를 하는 것도 회원들의 자산을 지키고 수익을 보장하고 각종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다 죽자’는 안 된다. 경쟁자를 제거하겠다고 족발 가격을 원가 이하로 내려버리면 말 그대로 다 죽는다. 소비자 입장에서는 싸게 먹으니 좋을 수 있지만 결국 살아남은 몇몇 가게는 다시 가격을 올릴 것이다. 아니면 가격에 맞춰 저품질 족발을 내놓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경쟁하되 죽이지는 말자. 그리고 도움을 받았다면 사회에 책임을 다하자. 공정한 경쟁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지나친 불평등을 막아야 하는 게 우리의 삶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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