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조합 모델로 성공한 USA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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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제조합 모델로 성공한 USAA
  • 류근옥 서울과학기술대 명예교수 klew@seoultech.ac.kr
  • 승인 2021.11.01 09: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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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신문=류근옥 교수] 공제조합은 일반 보험사와는 달리 동일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을 대상으로 보험사업을 영위한다. 교원공제는 학교 교사들만을 대상으로 보험을 판매한다. 택시공제는 택시를 가지고 영업하는 운전자를 고객으로 한다. 오늘날 세계적 보험회사가 된 미국의 USAA(United Services Automobile Association)도 군인만을 대상으로 보험을 판매하여 성공한 기업이다.

USAA는 1922년 미국 텍사스주의 샌안토니오(San Antonio)에 있는 건터(Gunter)라는 호텔에서 25명의 육군 장교들이 모여 시작한 자가보험(self insurance) 조직이다. 당시 25명의 장교가 보험사를 굳이 따로 만든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1차 대전 후 당시 군인들은 젊고 거칠다는 생각에 자동차 사고를 자주 낼 것이라는 기존 보험사들의 편견으로 자동차보험에 가입하기가 어려웠다. 한마디로 군인은 고위험군이라는 것이다. 이에 분개하여 그들은 군인만을 대상으로 하는 보험사를 따로 설립했다. 각자 보험료를 내고 이를 기금(pool)으로 관리하다가 그들 중 누가 자동차 사고를 당하면 그 돈에서 피해액을 보상해 주는 일종의 계(契)이자 공제조합이었다.

USAA는 처음 시작할 때는 육군 현역 군인들만을 대상으로 보험을 판매했다. 그 후 점차 해군 그리고 공군으로 그 대상을 확대했다. 1973년에는 재난지역 발생 시 주로 활용되는 주(州) 방위군(National Guard)까지 가입 대상을 넓혔다. 그 결과, 현재는 현역 군인은 물론 퇴역 군인 그리고 그 가족들을 모두 가입 대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USAA는 군인들을 대상(target)으로 하는 틈새시장을 파고 들어가 매우 특화된 마케팅 전략을 구사했다.

USAA는 다른 보험사와는 달리 보험판매를 대리점이나 브로커들에게 맡기지 않고 본사 직원들이 직접 판매(direct selling)하는 방법을 택했다. 당시에는 매우 이례적이고 획기적인 판매 방식이었다. USAA는 직접 판매로 대리점이나 설계사에게 주는 수수료를 절감하는 등 사업비를 크게 줄임으로써 다른 보험사보다 보험료를 저렴하게 책정할 수 있었다. 이것이 USAA의 차별화된 강점이었다. 처음에는 우편을 이용하여 보험을 직접 판매했다. 그 다음 1960년대에는 미국에서 전화가 발달하자 전화로 통신 판매를 대대적으로 전개했다. 우편에서 전화로의 전환은 대변혁이었다. 물론 오늘날에는 전화와 함께 주로 인터넷을 이용하여 보험을 직접 판매한다.

또한, 군인들만 대상으로 보험을 판매하기 때문에 보험가입자들 사이에는 직업적 동질성과 공동체 의식이 강해 다른 사람의 이익을 침해하면서 부당하게 보험금을 타려는 보험사기(insurance fraud)가 적었다. 특히 군인들은 명예를 중요하게 여기기 때문에 고의로 사고를 내거나 허위로 보험금을 타려는 비양심적 행위가 적을 것이라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그 결과 보험 풀(pool) 운영이 다른 보험사보다 훨씬 효율적이었다. 이것이 공제모델의 또 다른 강점이다.

이런 발전 과정에서 USAA를 세계적 보험사로 성장시킨 사람이 등장한다. 그는 민간 경영자가 아닌 군인 장성 맥더모트(Robert F. McDermott, 1920~2006)이다. 그는 미군에서 25년(1943~1968)간 근무하면서 주위에서 존경받는 군인이었고 장군으로 승진한 성공한 군인이었다. 그는 2차 대전 중 전투기(P-38) 조종사와 작전 장교로서 유럽 전역에서 직접 전투를 벌였고 61회 출격했다. 세계대전 후에는 국방성(Pentagon)에 근무하면서 아이젠하워 장군의 보좌관으로 일했다.

그 후 아이젠하워가 미국 대통령이 되면서 웨스트포인트(West Point) 육군사관학교와는 별도로 공군사관학교(공사)를 따로 신설했다. 이때 맥더모트는 공사 교장으로 발탁됐다. 그는 공사에서 경제학을 강의하면서 서비스 분야 종사자들을 위한 개인금융과 보험 관련 서적을 여러 권 출간했다. 군에서 레이더망 배치, 호송선단 편성, 잠수함 수색활동 등 군사적 의사 결정을 위해 개발한 시뮬레이션이나 게임이론 등이 경영학 발전에 많은 영향을 주던 시절이었다.

1968년 당시 USAA의 사장이었던 찰스 치버(Charles Cheever)는 그의 서적에 깊은 감명을 받은 나머지 맥더모트를 직접 찾아가 USAA의 경영 책임자로 영입하고 싶다고 제안한다. 그래서 그는 군을 떠나 새로운 꿈을 가지고 USAA라는 보험회사 CEO로 자리를 옮기게 된다. 그의 영도 하에 중견기업이었던 USAA는 미국 보험시장에서 최고의 대기업으로 급성장하게 된다. 즉, 그의 취임 당시 2억 달러의 자산을 가지고 있던 USAA가 1988년에는 110억 달러로 성장했다. 그리고 1993년 그의 은퇴 시에는 310억 달러(약 36조원)의 자산을 가진 초대형 일류 금융회사가 됐다.

맥더모트는 컴퓨터 및 통신기술을 활용해 계약서 작성, 보험료 청구, 손해사정 및 보험금 지급 등을 자동화하는 등 대대적인 업무 혁신을 이룸으로써 행정 간소화와 비용 절감 및 엄청난 기업 가치를 창출했다. 공군에서 터득한 IT 기술의 가치에 대한 그의 비전과 강력한 지원은 USAA가 급성장하는 가장 중요한 동력이 됐다.

USAA의 또 다른 성공 요인은 고객 서비스를 최우선하는 기업 문화의 창출이었다. 맥더모트에 의해서 서비스는 USAA의 사명(mission)이자 기업 문화로 등장했다. 서비스 정신은 직원들이 하는 일을 풍요롭게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의 삶을 풍요롭게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성경에서 예수님이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라고 한 것도 이러한 서비스 정신과 문화를 함축한 것이라고 그는 믿었다. 그는 고객 서비스가 회사의 이익이나 매출보다 우선순위에서 앞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 매출이나 이윤은 저절로 내실 있게 성장한다는 것이다. 이는 당시에 매출이나 이윤 성장을 우선 강조하던 타사의 대부분 CEO와는 다른 생각이었다.

USAA는 2020년 매출 기준으로 포춘(Fortune)지가 선정하는 미국 500대 기업 중 87위이다. 세계 500대 기업 명단에서는 330위에 위치하는 초대형 복합 금융 서비스 기업집단이다. 이 회사 종업원 수만 3만6000명이 넘는다. 자동차보험 이외에 일반 손해보험, 생명보험과 연금 등 여러 보험상품은 물론 투자와 은행 상품을 미국 현역 군인 및 퇴역 군인 그리고 그 가족들에게 판매한다. 오늘날에는 판매 대상을 넓혀 보험사기가 상대적으로 적은 생명보험과 연금 상품의 경우에는 군인 가족이 아닌 일반인들에게도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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