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협공제 12년째 표류, 무엇이 문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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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공제 12년째 표류, 무엇이 문제일까?
  • 박형재 기자 parkhyungjae@kongje.or.kr
  • 승인 2021.09.0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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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공제 근거법 마련됐지만, 주무부처 공정위 ‘복지부동’
시행령‧시행규칙 제정 안해 공제사업 제동, 청와대 중재안도 거부
생협, ‘140만 조합원 공동행동’… 국민청원‧1인시위‧국회 포럼 등 전방위 압박
전문가 “관(官)에서 공제 막는 건 전례없는 일, 생협공제 허용해야”

# 2010년 3월, 생협법 전부개정안이 공포됐다. 기존 생협법이 22년 전 제정돼 현실과 맞지 않고, 규제 조항이 많아 이를 개선하기 위한 목적이다. 개정 생협법은 생협이 생활에 필요한 물품까지 판매할 수 있도록 ‘사업 범위의 확대’와 함께 ‘공제사업 가능’ 등이 명시됐다. 이로써 생협도 공제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됐다.

# 2021년 9월, 생협법 개정 이후 11년이 지났지만 생협 공제사업은 한 걸음도 나아가지 못했다. 주무부처인 공정거래위원회가 시행령 및 시행규칙 등을 만들어주지 않아 멈춰선 것이다. 공제 근거법이 없어 사업을 못하는 경우들은 있지만, 주무부처의 거부로 중단된 경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아이쿱생협 등 생협단체들과 공정거래위원회가 생협 공제사업 문제로 대립하고 있다. 생협 측은 “공정위가 10년 넘게 법에서 허용한 공제사업을 뚜렷한 이유 없이 방치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반면, 공정위는 “생협 공제는 타 공제조합과 달리 조합원 진입장벽이 낮아, 사실상 일반인을 상대로 사업하는 만큼 수협, 신협 등 금융권 수준의 규제가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아이쿱생협, 대학생협, 공정위 등은 최근 청와대 사회적경제비서관실 요청으로 2차례 만나 관련 논의를 진행했으나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하지 못했다. 공정위는 청와대에서 제시한 중재안도 거부했다.

생협은 이에 반발해 김정희 아이쿱생협 회장 등 생협 대표단 1인 시위, 국회 포럼, 청와대 국민청원, 국정감사 질의 등 ‘140만 생협 조합원 공동행동’에 들어갈 예정이다.

생협 공제가 왜 10년 넘게 표류하고 있는지, 양쪽 모두 만족할만한 해법은 없는지, 공정위와 생협의 입장차와 주요 쟁점들을 살펴봤다.

김정희 아이쿱생협 회장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김정희 아이쿱생협 회장이 국회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쟁점1_ 공정위가 생협공제를 거부하는 진짜 이유는 ‘관리인력 부족?’

2010년 3월 생협법이 개정돼 공제사업이 추가될 때까지만 해도 양측의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2012년 당시 김동수 공정위원장은 6개 생협연합회 대표자 간담회에서 “생협 공제사업 인가 기준과 감독규정을 금년 상반기 중 마련하고, 하반기에 입법 조치를 완료해 연내 생협 공제사업 시행을 허용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공정위 역시 보도자료를 통해 “개정생협법은 생협의 공제사업을 허용하고 있어, 생협의 공제사업 시행과 관련한 법률상의 제약은 이미 해소되어 있는 상황”이라고 언급했다.

생협에 대한 공정위 기류가 바뀐 것은 2015년부터다. ‘협동조합의 자생적 발전 과제’를 주제로 한 국회 토론회에서 홍대원 공정위 소비자정책과장이 생협 공제사업 시행시 예상되는 부작용으로 ‘연합회 파산시 소비자 피해’, ‘공제사업 수익수단화’ 우려를 제기한 것이다. 다만, 생협이 소비자 피해 방지 대책을 마련하면 공제사업을 허용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2017년 2월, 공정위가 생협과 협의 없이 일방적으로 생협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공정위는 생협 공제사업의 안정적 시행을 위한 근거규정을 마련하겠다며 사업요건, 내부통제, 처벌 기준 등을 모두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생협연합회의 공제사업 금지(전국연합회만 허용) △금융위원회 감독‧보고, 금융감독원 검사 허용 △내부통제 강화: 감사위원회‧준법감시인‧공제자율분쟁기구 등 도입 △투명성 강화: 외부 감사‧독립회계, 경영공시 등 △처벌 강화: 규정 위반시 6개월 이내 업무정지 등이다.

개정안은 생협을 비롯한 시민단체, 국회 등의 반대로 결국 철회됐으나 이를 계기로 많은 논란이 야기됐다. 공정위가 생협 주무부처임에도 수년째 공제사업 시행규칙과 시행령 등 관리감독 규정을 마련하지 않아 사업이 표류했는데, 이 와중에 사전 협의되지 않은 입법개정안을 발표한 것은 공제사업 시행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공정위는 생협 공제사업이 사실상 보험업과 다름없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조합이 보험료에 상응하는 금전을 조합원으로부터 받고, 조합원에게 사고‧질병 등이 발생하면 미리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는 만큼 수협, 신협 등에 준하는 관리감독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공제사업은 많은 사람이 관여하고 신뢰가 생명인 사업으로, 자칫 잘못하면 수많은 피해자가 생겨날 수 있다”며 “생협 업계와 함께 TF팀을 구성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여러 방안을 논의하던 중 생협법 개정안까지 나온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공정위에서 생협 공제사업 시행에 따른 관리감독이 부담스러워 규제 일변도로 나서는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생협은 전체 가구의 6%인 140만 가구가 조합원으로 가입하고 있으며, 사업규모 역시 연 1조4000억원에 달한다. 공제사업을 시작하면 관리감독에 많은 인력이 투입돼야 하는데, 공정위에는 생협 담당직원조차 아직까지 배정되지 않은 상황이다. 다만, 공정위는 주요 업무가 소비자 보호와 규제라서 국토교통부 등 산업 육성에 초점이 맞춰진 정부부처와 달리, 생협만을 위한 담당자를 두기 어려운 사정도 있다. 공정위에서 사실상 관리 여력이 없어 거부권을 행사하는 것이란 지적이 나온다.

공제업계 사정을 잘 아는 A씨는 “생협 주무부처가 10여년 전 기획재정부에서 공정위로 바뀌면서 공정위가 관리 업무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규제기관 특성상 생협에 대한 전문성도 없고, 이를 컨트롤할 여유 인력도 없어 생협 공제사업 추진에 반대하는 중이다. 그러나 관리하기 어렵다고 규제 일변도로 나서는 것은 황당하다. 입법부에 의해 만들어진 생협법안이 행정부에 의해 무력화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2017년 당시 공정위가 추진하다 무산된 생협법 개정안과 타 공제관련법 비교. 금융위원회 검사, 내부통제기준, 준법감시인 등 다수의 규제가 포함된 것이 눈길을 끈다.
2017년 당시 공정위가 추진하다 무산된 생협법 개정안과 타 공제관련법 비교. 금융위원회 검사, 내부통제기준, 준법감시인 등 다수의 규제가 포함된 것이 눈길을 끈다.

쟁점2_ 조합원 공동행동 나선 생협, 잃어버린 10년 되찾을까?

생협은 조합원 공동행동을 통해 지난 10여년간 잃어버린 권리를 되찾겠다는 입장이다. 공정위의 복지부동으로 법에 규정된 공제사업이 멈춰선만큼 다각도로 공정위를 압박해 사업을 반드시 재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아이쿱생협은 지난 8월 19일 공정거래위원회의 생협공제 시행안 마련을 촉구하며 140만 조합원 공동행동에 돌입했다. 김정희 회장과 이은선 부회장이 각각 국회와 공정위 앞에서 1인 시위를 했고, 생협 회원조합 대표자 100명도 전국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아이쿱생협은 행복중심생협, 대학생협 등과 함께 청와대 국민청원도 8월 20일부터 시작했다. 9월 8일에는 ‘생협 공제 시행 촉구를 위한 국회 공동 기자회견 및 포럼’을 개최하고, 공정위 국정감사 질의 등으로 활동을 이어나갈 예정이다.

아이쿱생협은 2010년 국회가 생협법에서 공제사업을 허용한 이후 5대 생협연합회의 조합원 수와 매출액 모두 2배 이상 성장하며 사회적 신뢰를 형성해 왔지만, 공정위가 여전히 생협의 신뢰에 의문을 제기하며 12년째 시행방안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생협 공제에만 상대적으로 과도한 규제를 적용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생협공제는 비회원 이용 금지로 제한된 회원만 이용 가능한데, 공정위에서 요구하는 금융위 감독, 감사위원회, 내부통제기준, 준법감시인 등의 규제는 신협, 수협 등 전체사업에 적용되는 규제로 동일하게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아울러 공정위가 주무부처인 직접판매공제조합, 한국상조공제조합 등은 방문판매와 상조 관련 업무로 그 위험성과 민원 발생률, 사업규모가 매우 큰데도 공정위가 생협에 적용하고자 하는 규제는 적용되지 않아 형평성에 위배된다.

오귀복 아이쿱생협 상무는 “공정위가 주관하고 생협과 전문가가 참여한 TF 논의 결과, ‘소비자 피해 방지 및 건전한 경영’을 위한 규제 핵심 방안을 담은 시행방안을 공정위에 제출했지만 공정위는 최소한의 의견도 없이 소비자 피해 우려만 내세우며 검토조차 하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생협 공제는 공정위 우려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장점들이 있다. 조합원의 자발적 가입과 비용절감 노력으로 운영비용이 적게 들고, 비영리 성격이 있어 일반 보험사에 비해 보험 보장률이 높은 것이 특징이다.

복잡한 보상기준과 약관으로 정보비대칭이 발생하는 보험 상품과 달리, 상대적으로 단순한 상품 설계에 기반한 보상기준과 약관으로 불완전판매 가능성이 낮고, 조합원이 소비자이자 운영 주체라서 상호부조성에 충실한 소비자 맞춤 설계가 가능한 것도 장점으로 꼽힌다.

생협은 기존 보험에서 질병에 걸렸을 때 금전적으로 보상해주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만성질환, 암 등의 예방과 관리에 초점을 맞춘 공익성 높은 상품을 개발해 현재의 보험 사각지대를 커버하는 내용의 공제상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희 아이쿱생협 회장은 “가까운 일본만 봐도 생협 공제로 소비자조합원들은 큰 혜택을 누리고 있다”며 “농협, 수협, 새마을금고도 하는 공제사업을 생협만 막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생협은 8일 국회 기자회견 및 온라인 포럼을 통해 공정위의 생협공제사업 시행방안 마련을 촉구했다. 

쟁점3_ 평행선 달리는 공정위‧생협, 타협점 없나?

생협은 공정위와 협의를 통해 해묵은 생협공제 사업을 조속히 추진하겠다는 계획이다. 이와 관련, 지난해 11월부터 공정위 공제 담당자와 협상 테이블을 마련하고 지속적으로 생협 공제사업 허용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왔다. 지난 3월에는 공정위에 공제사업 감독기준, 아이쿱생협 상품안 등을 전달했으며, 이후 5대 생협 연합회의 공제 후속논의 촉구 의견서를 발송하는 등 지속적으로 생협의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이밖에 생협 정관에 공제사업을 명시하는 문제를 두고 공정위와 행정소송도 하고 있다.

아이쿱생협 관계자는 “공정위에서 우려하는 부분을 잘 알고 있다. 생협의 조합 가입 조건이 까다롭지 않아 일반인들이 공제상품에 가입할 수 있고, 그러다 사고가 나면 소비자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각종 안전장치를 마련해 공정위에 제안했으나, 제대로 된 검토조차 하지 않아 답답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생협 측은 공정위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다양한 안전장치를 검토 중이다.

파산 위험으로부터 공제계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수의 법칙을 고려하여 연합회 소속 조합원 수가 일정 수준(예: 10만명) 이상인 경우에만 공제사업을 허용하는 방안은 물론, 공제사업 영위가 가능한 연합회 최저출자금 규모를 현재 1억원 이상에서 10억원 이상으로 상향조정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또한, 공제사업을 수익수단으로 악용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비공제사업 매출액(회원조합 매출액 합계액) 규모가 일정수준(예: 1000억원) 이상인 연합회만 공제사업을 허용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생협에서 공정위가 우려하는 소비자 피해 방지장치들을 마련한 만큼, 이번엔 공정위가 응답할 차례다. 무턱대고 반대할 게 아니라 생협의 제안을 살펴보고 협상테이블에 앉아 이견을 좁혀나가는 자세가 요구된다.

앞서 언급했듯 근거법이 있는 공제사업을 주무부처가 관리감독을 이유로 막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다. 생협 공제로 인해 생겨나는 소비자 혜택과 위험성의 무게를 비교해 혜택이 더 크다고 판단되면 마땅히 사업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줘야 한다.

김형미 상지대 사회적경제학과 교수는 “과거 수협, 신협 등이 공제사업을 시작할 당시에도 100% 완벽한 모습으로 시작한 게 아니라 여러 시행착오를 겪으며 본 궤도에 올랐는데, 지금 공정위가 생협에 요구하는 내용은 처음부터 100% 완성도를 갖추라는 것이다. 이는 역차별이며 매우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일본의 경우 생협이 공제를 수행하는데 있어서 각종 유의해야할 점들을 후생노동성에서 생협연합회와 같이 논의해서 시행한다. 이런 민관협력 프로세스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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