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지원금도 공제보험의 원리로 지급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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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난지원금도 공제보험의 원리로 지급하자
  • 류근옥 서울과기대 명예교수 klew@seoultech.ac.kr
  • 승인 2021.08.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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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공제신문=류근옥 교수] 코로나바이러스 전염병으로 정부는 재난지원금을 조만간 지급할 예정이다. 이는 공동구제의 정신에 입각한 공제나 보험의 기능과 매우 유사하다. 그러나 정부의 재난지원금 지원 계획은 논리와 공정성이 부족하다. 정부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평가한 가계별 부의 수준을 기준으로 전체 국민 중 상위 부자 12.3%를 빼고 그 나머지 87.7%에게 한 명당 25만 원씩 지급하겠다고 한다.

우선 공단 자료는 직장과 지역 가입자에 대하여 서로 다른 기준으로 부를 산출하지 않기 때문에 객관적 기준이 될 수 없다. 게다가 무슨 근거로 누군 주고 누군 안주며 게다가 상위 12.3%는 왜 배제하느냐가 불분명하다.

재난지원금 지원이 그 공정성을 확보하려면 피해액을 검토하여 피해가 큰 사람에게는 많은 금액을 지급하고 피해가 적은 사람에게는 적은 금액을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게다가 피해가 없고 오히려 전에보다 호황을 누리는 사람에게도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은 공정한 구제의 정신과는 거리가 멀다.

민영 보험이나 공제에서는 공정성과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실손보상의 원칙’에 따라 지급 대상자와 보험금액을 정한다. 즉 피해 발생액만큼만 보험금을 지급하는 것이다. 어느 개인이 피해액보다 더 많은 보험금을 부당하게 받으면 그 결과 이익이 생기고 소위 도덕적 위태(moral hazard)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도덕적 위태는 제도를 악용하여 부당하게 이익을 취함으로써 선의의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위이다.

그런 면에서 이번 5차 재난지원금 지급대상 선정에는 문제가 많다. 왜냐하면, 부의 수준이 상위 12.3%에는 들지 않지만, 이번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종전보다 오히려 소득이 올라가거나 장사가 잘된 사람에게도 지급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예컨대 택배업은 코로나 이전보다 훨씬 호황이다. 이는 실손보상의 원칙에 크게 어긋난다. 반면에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이전보다 소득이 많이 줄어들고 경제적 피해가 발생하였으나 상위층 부자라는 이유로 지급대상에서 제외되는 사람도 있다. 이는 마치 건강보험에서 소득이 높은 부자는 보험료도 많이 냈는데 병이 나서 치료 보험금을 청구하니 당신은 부자니까 보험금을 안 준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재난지원금 지급의 공정성과 효율성을 높이기 위하여 2013년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쉴러(Robert Shiller) 교수의 아이디어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그는 코로나바이러스가 아니더라도 21세기에는 4차 산업혁명의 진전과 AI의 획기적인 발달로 전통적인 직업 파괴 등 재난적 수준의 위기가 계속 올 수 있다고 전망한다. 2013년 영국 옥스퍼드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로봇이나 자동화 기술의 발전으로 미국 내 일자리의 47%가 20년 이내에 기계로 대체되고 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래서 쉴러 교수는 21세기 직업 파괴적 재난에 대비하고 개인 삶의 안정성을 보장해 주기 위하여 생계(livelihood)보험의 개발을 제안한다. 유전공학과 같은 새로운 학문을 전공하는 사람이 설령 좋은 결과를 내지 못하고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그의 생계가 유지될 수 있는 공정한 보험이나 구제 제도가 있으면 유망한 직업을 포기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부가 가치가 큰 창조 경제나 벤처 창업에 도전하는 젊은 인재를 모을 수 있고 이것이 국가 경제 발전의 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전통적 고용보험은 어느 개인이 본인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실직하였느냐가 보험금 지급을 위한 중요한 기준이 된다. 반면에 생계보험은 고용시장의 지수, 즉 어느 직업이 일정 수준 이상으로 일자리를 잃었느냐 여부로 보험금이 지급되는 지수(parametric)보험이며 정부의 재난지원금처럼 국민의 생계와 관련된 제도이다. 어느 직종이 호황이면 개인이 해당 직종에서 해고당하였어도 곧 다른 직장을 쉽게 구할 수 있으므로 개인별 해고 자체가 경제적으로 큰 손실이 아니라는 논리이다. 그러나 기술 변화로 어느 직종에서 대량 실직이 발생하면 그 영역 내에서는 다른 직장을 구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어려우므로 해당 직종의 사람들이 업종전환을 준비할 수 있도록 지원금을 지급하는 것이 필요한데 이것이 생계보험이다.

생계보험은 현행 고용보험과는 달리 직종별 시장지수를 기준으로 보험금 지급 여부를 결정하기 때문에 개인이 고의로 직장을 그만두거나 일자리를 열심히 찾지 않는 도덕적 해이가 적다는 장점이 있다. 게다가 생계보험은 직장을 가진 사람들이 다 같이 보험료를 내고 향후 기술 변화 등으로 쇠퇴하거나 없어지는 직종의 근로자들에게는 보험금을 통해 재정적으로 도와주기 때문에 소득 재분배 효과도 있다. 그 결과 생계보험은 소득 양극화 혹은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를 줄여줄 수 있고 한 나라 경제에서 직업과 고용의 안정성을 높일 수 있다.

요약하면, 코로나바이러스 재난지원금도 쉴러 교수의 아이디어를 참고하여 업종 혹은 직업군별 고용지수 혹은 소득감소 등을 검토하여 피해 정도에 따라 차등적으로 지급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울러 공제 보험과 같은 공동구제의 정신을 살리면서 국민 사이에 효율성과 공정성을 확보하는 제도로 설계되어야 한다. 그래서 쉴러 교수는 효율적이고 공정한 보험의 역할은 21세기 불확실한 시대에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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