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사노동자 괴롭히는 ‘가사노동자 보호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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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노동자 괴롭히는 ‘가사노동자 보호법’
  • 고영찬 기자 koyeongchan@kongje.or.kr
  • 승인 2021.07.2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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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인증 기관만 법 적용, 영세 직업소개소 부담 가중
플랫폼사업자 시장 진출에 ‘단시간 노동, 별점테러’ 우려
가사노동자 보호 실효성 가지려면, 공제회 또는 공공플랫폼 고민해야
지난 2019년 가사노동자협회의 특별법 요구집회
지난 2019년 가사노동자협회의 특별법 요구집회

[한국공제신문=고영찬 기자] 지난 5월 국회 본회의에서 ‘가사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안’이 통과됐다. 근로기준법이 만들어지고 68년이 지나서야 사각지대에 있던 가사노동자들이 법의 보호를 받게 됐다.

이 법안은 가사노동자들이 최저임금 및 유급 휴일, 연차, 퇴직급여, 4대 보험 등 노동자로서 기본적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가사노동자들은 지금까지 근로기준법을 적용받지 못했다.

한국가사노동자협회, 전국가정관리사협회 등 시민단체들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그러나 두 달이 지난 지금 이 법은 찬밥신세가 됐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걸까.

정부인증 하늘의 별따기, 벼랑 끝 내몰리는 직업소개소

가장 큰 문제는 가사근로자법에 포함된 독소조항이다. 이 법은 정부인증기관에 고용된 가사도우미에 한해 권익을 보호받도록 한정했다. 이는 가사노동자를 유급 고용하고 서비스 제공 중 생길 수 있는 손해에 대한 배상수단을 갖춘 법인을 가사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인증하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기존 직업소개소에서 파견되는 가사도우미들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게다가 직업소개소들은 영세한 곳이 대부분이라, 정부 인증기관이 되는 게 쉽지 않다.

더구나 가사서비스 시장은 소비자와 노동자의 직거래가 많아 불안요소가 많은 사업이다. 소비자가 직업소개소나 플랫폼을 통해 가사노동 서비스를 이용한 뒤 만족도가 높을 경우 약 10%의 수수료를 내지 않기 위해 구두합의 후 일을 계속하는 경우가 있다. 직업소개소 입장에서는 가뜩이나 불안한 사업모델에 수익성까지 떨어지게 된 셈이다.

부산에서 직업소개소를 운영하는 김종명(48)씨는 “홍보는 대대적으로 하면서 법을 너무 허술하게 만들었다. 대부분 소규모인 직업소개소가 비용을 부담하면서 정부인증 기관이 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지적했다.

별점테러에 감정노동자 전락

가사노동 서비스 제공기관에 민간 플랫폼회사가 줄줄이 진출하면서 가사노동자가 감정노동자로 전락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카카오의 ‘청소연구소’, 인터파크의 ‘대리주부’가 고객과 가사노동자를 연결시켜주는 사업을 시작했고, 당근마켓도 가사노동자 연결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플랫폼 사업자들은 기존에 구축해놓은 플랫폼 안에 가사노동자 연결 기능만 추가하면 되는 상황이다. 각 플랫폼들이 가사노동 서비스를 배달어플처럼 소비자가 이용후기와 평가를 할 수 있도록 구성해놓으면서 직업소개소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플랫폼 이용자의 무분별한 별점 테러도 서비스를 제공하는 가사노동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한다. 해당 플랫폼에서 일을 계속하려면 좋은 평점을 유지해야 해 ‘갑질’을 당해도 참을 때가 많다는 주장이다.

구로에서 거주하며 주로 강남에서 일을 하는 A씨(55)는 “고객이 2시간 요청하셨는데 청소시간이 더 소요된다고 말씀드리면 고객이 값을 추가로 지불해야하는지 물어본다. 추가요금을 받으면 평가가 안좋을 것이 분명하기 때문에 더 달라고 하기 애매하다. 자연스럽게 착취로 이어지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플랫폼의 선두경쟁은 결국 가사노동자 피해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김재순 전 국가정관리사협회 회장은 “플랫폼 기업의 경쟁이 심해지면 가격이 저렴한 단시간 서비스 위주로 판매되고 결국 노동강도는 올라간다”고 지적했다.

카카오 신사업 조직으로 시작된 가사도우미 플랫폼 청소연구소
카카오 신사업 조직으로 시작된 가사도우미 플랫폼 청소연구소

뒤늦게 대책마련 고심, 공제조합이 답

정부는 뒤늦게 대책을 마련하고자 고심하고 있으나 여성가족부의 ‘가사노동 협동조합’ 지원계획 외에는 별다른 대안이 없는 상황이다. 내년에 겨우 가사노동자에 대한 연구용역이 시작된다.

국회에서 법안이 논의될 당시에는 사회적 협동조합 등의 공익단체가 가사노동 서비스 제공기관으로 참여할 것으로 전망했으나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소비자가 정부인증을 받은 제공기관을 찾아야 하는 경우 손쉽게 이용할 수 있는 플랫폼부터 찾게돼 실상은 플랫폼 경쟁으로 치닫고 있다.

김종명 씨는 “플랫폼으로 시장이 옮겨가면 직업소개소도 피해를 보지만 당사자인 가사노동자들이 오히려 더 혼란스럽고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여러문제가 야기되는 원인으로는 국회 논의 과정에서 ‘공익적 제공기관 육성’ 이라는 문구가 삭제됐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나온다. 현재는 이른바 ‘떼법’이라는 의견이다. 노동자 교육과 전문성을 향상시키고 제도적으로 가사노동자의 권익과 인권을 위해 교섭하는 전문 협동기관이나 비영리단체가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가사노동자를 보호하자는 취지의 법은 만들어졌으나 구체적인 방법이나 구조를 만들어 놓지 않아 기존 시장의 혼란을 가중시키고 결국 플랫폼사업자의 새로운 먹잇감으로 전락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따라서 정부가 일부 출자금을 지원해주고 상호부조 성격의 가사노동자 공제회를 구성하거나, 제도가 정착될 때까지 정책적인 혜택을 보장하는 공공플랫폼을 만드는 등의 대안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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