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조합 이사장 ‘바지사장’ 만든 국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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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제조합 이사장 ‘바지사장’ 만든 국토부
  • 박형재 기자 parkhyungjae@kongje.or.kr
  • 승인 2021.03.02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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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 관련 공제조합 경영혁신안’ 논란 일파만파
‘협회-조합 금산분리’ 추진하다 돌연 이사장 동반퇴진 카드 빼들어
건설협회장 운영위 복귀 가능성 열려있어, 이사장만 퇴출될 수도
TF회의 과정도 일방적 강요, ‘가이드라인’ 정해놨나?
국토부 '건설 관련 공제조합 경영혁신안' 일부. 협회장과 이사장을 모두 당연직 위원에서 제외해 논란이 일고 있다.
국토부가 발표한 '건설 관련 공제조합 경영혁신안' 일부. 건설협회장과 공제조합 이사장을 모두 당연직 운영위원에서 제외해 논란이 일고 있다.

# 2022년 6월, 건설공제조합 이사장과 건설협회장이 모두 조합 운영위원회에서 제외됐다. 국토교통부가 2021년 2월 9일 발표한 건설·전문건설·기계설비 등 3개 공제조합 경영혁신안에 따른 것이다. 국토부는 ‘박덕흠 논란’을 계기로 건설협회장을 조합 당연직 운영위원에서 배제하면서, 형평성을 이유로 이사장도 함께 제외했다. 조합 구성원들은 “이사장이 빠지면 공제조합이 사유화되고, 조직 전체의 방향성을 잃을 수 있다”고 반발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 2023년 3월, 건설공제조합 총회에서 건설협회장이 운영위원장으로 다시 당선됐다. 국토부 경영혁신안에 따라 협회장이 당연직 운영위원에서 제외됐지만, 조합원 투표를 통해 운영위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열려있었기 때문이다. 건설협회는 대형 건설사 대표들을 회원으로 두고 있어 조합 총회에서도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협회장이 조합 운영에 본격적으로 개입하기 시작했지만, 이사장을 비롯해 이를 견제할 사람이 없었다. 

2023년 가상 시나리오, 건설협회장이 ‘조합 장악’ 

국토부가 2월 9일 발표한 ‘건설 관련 공제조합 경영혁신안’을 두고 쓴 가상 시나리오다. 이번 혁신안의 ‘독소조항’인 건설협회장-공제조합 이사장 운영위원회 동반 퇴진이 현실화될 경우 심각한 문제가 예상된다. 

결과적으로 공제조합 이사장은 운영위에서 제외되고, 건설협회장이 총회 투표를 통해 재신임돼 운영위를 장악하는 그림이 나올 수 있다. 결국 ‘박덕흠 논란’을 계기로 시작된 건설협회-조합 분리 구상이 유명무실해진 것이다. 

공제업계 A전문가는 “만일 이사장이 운영위에서 빠지고 협회장이 다시 당선돼 돌아오면, 무소불위의 권력을 아무도 견제할 수 없게 된다”며 “이사장이 ‘바지사장’처럼 되면서 공제조합 업무추진력도 떨어지고 결국 공제조합은 일부 건설업자의 이익을 강조하는 쪽으로 사유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건산법 개정의 취지는 공제조합을 공정하게 운영하기 위해 ‘금산분리’처럼 이해당사자인 사업자가 모인 협회로부터 조합을 분리하는 것인데 이상하게 주객전도(主客顚倒)됐다”고 비판했다. 

국토부가 경영혁신안을 발표하게 된 계기는 박덕흠 논란이다. 2020년 9월, 국토부 국정감사에서 박덕흠 의원이 2009년 전문건설협회장과 조합 운영위원장을 겸임할 당시 지인 소유 골프장을 비싸게 사들이는 등 이권에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이후 건설협회장이 공제조합 당연직 운영위원을 맡지 못하도록 건설산업기본법 시행령 개정안이 추진됐다. 공제조합은 운영 자산이 수조원에 달하는 금융기관인만큼, 이해관계자가 개입할 수 없도록 독립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나 국토부는 공제조합 경영혁신안을 발표하며 이해할 수 없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건설협회장-이사장 운영위 동반퇴진이 그것이다. 애초 건설협회장의 당연직 제외만 논의되던 것에서 느닷없이 이사장 동반퇴진으로 바뀐 배경에는 협회측 ‘로비’가 있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협회에서 언론에 건산법 개정 반대 보도자료를 뿌리고, 국회와 국토부에 탄원서를 제출하는 등 영향력을 행사한 것이 주효했다는 것이다.  

건설업계 대표단이 탄원서를 배경으로 건산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건설업계 대표단이 탄원서를 배경으로 건산법 시행령 개정안에 대한 반대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이번 조치로 공제조합 운영 전반에 협회장이 간섭하는 관행이 더 심각해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건설공제조합 노조 관계자 B씨는 “이제까지 운영위 회의 관행을 보면 협회장이 운영위원장을 겸임하면서 전문위원들의 의견을 무시하고 ‘날치기 통과’시킨 적이 많은데, 이제 이사장마저 없으니 그만큼 협회 측 입지가 강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지금도 전체 운영위원 중 건설사업자가 절반 가량을 차지해 ‘거수기’ 역할만 담당하고, 이들을 중심으로 조합 전체의 이익보다 일부 조합원의 이익을 대변하는 안건들을 통과되고 있는데, 이런 문제가 더욱 심화될 것이란 지적이다. 

현재 건설공제조합 운영위원을 맡고 있는 C씨 역시 “지금도 건설협회장이 전문위원들의 말을 무시하고 회의를 독단적으로 운영하며 여러 폐단들이 나오고 있는데, 이사장이 운영위에서 배제될 경우 이상한 조직으로 변질될 것”이라고 말했다. 

졸지에 혁신 대상이 된 건설·전문건설·기계설비공제조합 관계자들도 이번 조치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이사장이 운영위에서 빠지면 내부 목소리를 제대로 반영할 수 없고, 구심점이 사라져 조합 방향성이 잘못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특히 협회장은 당연직 운영위원에서 빠져도 다시 조합원 투표를 통해 운영위로 복귀할 수 있고, 이사장은 완전히 배제되는 내용은 문제가 많다는 반응이다.  

D공제조합 관계자는 “초등학교도 교장선생님이 운영 전반에 관여하는데, 공제조합 같이 큰 조직의 수장이 운영위에 참석할 수 없는 것은 말도 안된다”며 “직원들 사이에서 ‘우리가 초등학교만도 못하냐’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같은 우려에 대해 국토부 측은 “문제될 게 없다”는 입장이다. 공제회는 이사회와 운영위원회, 총회가 각각 존재하며, 주요 의사결정은 이사장이 주관하는 이사회에서 결정되고, 운영위는 이에 대한 정책 방향이나 점검을 하는 수준이라서 이사장이 굳이 운영위에 중복 참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국토부 E관계자는 “이사회에서 결정한 부분에 대해 운영위에서 감독권한을 행사하는 건데, 그런 부분을 (이사회에 참석하는) 이사장이 다시 운영위에 들어가는 건 맞지 않다고 본 것”이라고 해명했다. 

건설공제조합 노조 관계자가 국무총리실 앞에서 '국토부 혁신안'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건설공제조합 노조 관계자가 국무총리실 앞에서 '국토부 혁신안'에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절차적 정당성 없는 TF, 일방적 수용 강요 

국토부 경영혁신안에서 논란이 된 것은 이 뿐만이 아니다. 우선 각 공제조합의 지점 축소 계획이 도마 위에 올랐다. 국토부는 건설공제조합 지점을 현 39개에서 내년 6월까지 10개, 전문건설공제조합 지점은 32개에서 20개,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 지점수는 6개에서 3개로 축소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기존 조합원의 공제‧보증 서비스 이용에 불편을 초래할 것으로 예상된다. 

통상 조직 내 지점 축소는 경영 실적이 악화돼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뤄진다. 하지만 현재 3개 공제조합은 견실한 순이익을 유지하고 있다. 건설공제조합은 2019년 기준으로 1533억원의 순이익을 냈다. 같은 해 전문건설공제조합과 기계설비건설공제조합도 각각 1451억원과 129억원의 순이익을 기록했다. 

‘목표수익률 5%’ 가이드라인도 논란이다. 국토부는 ‘건설 관련 공제조합들의 수익률이 2~4%대로 다른 연기금 대비 지나치게 낮다’며 2025년까지 출자금 투자수익률 5% 달성을 목표로 제시했다. 

이를 두고 자칫 무리하게 수익률을 높이려다 위험자산에 투자해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공제조합 특성상 투자 포트폴리오를 안전자산과 위험자산에 적절히 배분해 자산운용을 하고 있는데, 수익률 5%를 맞추는 과정에서 리스크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와 함께 공제조합은 건설업체들이 전액 출자하여 설립한 민간기업인데, 국토부가 너무 과도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국토부는 이번 조치에서 임직원 업무추진비, 복리후생비, 성과급 축소, 연가보상 일수 감축 등도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공제조합 부실화시 건설업 동반 부실화가 우려되며, 공적자금 투입이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건설 관련 3개 공제조합은 국토부 설명과 달리, 부실이 발생해도 공적자금이 필수로 투입되지 않는다. 공제회법 등에 따르면, 교직원공제회 등 7대 공제회만 공적자금 투입 대상이기 때문이다.  

공제회 이사장을 지낸 F교수는 “국토부는 공제조합에 대한 관리감독 권한을 가진 조직일 뿐인데, 어떤 법적 근거로 공제조합 운영에 이렇게 개입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무엇보다 이번 조치를 공제조합과 논의하는 과정에서 절차적 정당성도 지켜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국토부는 보도자료에서 ‘경영혁신안 내용은 3개 공제조합과 3개월간 협의를 통해 만들었다’고 설명했으나, 복수의 조합 관계자들은 “처음부터 정해진 가이드라인이 있었고, 공제조합 의견은 묵살됐다”고 주장했다. 

회의에 직접 참석했던 공제조합 직원 G씨는 “지점 축소에 따른 인력 감축 등 여러 문제들에서 노사 합의가 필요한 부분들이 있어서 국토부 측에 ‘노사 합의’ 문구를 넣어야 한다는 점을 꾸준히 강조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른 공제조합 직원 H씨는 “국토부가 무리한 요구를 하는 바람에 이에 반발한 모 공제조합 담당자가 한동안 회의를 보이콧하기도 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공제조합들은 국토부 혁신안에서 복리후생비 등 임직원 비용 감축은 불가피하더라도, 이사장 운영위 제외 조항은 반드시 철회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조합 최고경영자 격인 이사장을 운영위에서 제외할 경우, 조합을 위한 목소리를 내는 창구를 없애는 것과 같다는 지적이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이사장을 운영위에 참관 형태로 참여시키고, 외부 위촉직 운영위원을 과반수 이상 포진해서 한쪽으로 편중되지 않게 할 것이라고 해명했으나, 협회장이 운영위원장으로 다시 돌아와 직권상정으로 업무를 처리할 경우 공제조합 주인의 목소리가 의사결정에서 배제될 공산이 크다. 

국토부 관계자는 “그동안 외부에서 논란이 많이 된 공제업계 이슈에 대해 TF를 꾸려서 조합 의견을 청취했고, 조합에서 자율적으로 제시한 내용으로 혁신안을 만든 것일 뿐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국공제신문=박형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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