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상행정’에 누더기 된 소액단기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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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탁상행정’에 누더기 된 소액단기보험
  • 박형재 기자 parkhyungjae@kongje.or.kr
  • 승인 2021.02.08 0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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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시행령 발표…자본금 20억원, 보험기간 1년 제한
높은 진입장벽에 기업 좌절, 미니보험 활성화 취지 무색해져
日 자본금 1억원이면 설립, 재보험·공탁금 등으로 ‘안전장치’
日 벤치마킹에도 “자본금 25억·보험금 상한액 5000만원” 이해불가
금융위원회가 5일 발표한 「보험업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일부.
금융위원회가 5일 발표한 「보험업법 시행령」 개정안 입법예고 일부.

[한국공제신문=박형재 기자] 날씨보험, 반려견보험 등 소액단기보험 활성화를 위한 보험업법 개정안이 탁상행정에 누더기로 변질됐다. 최초 3억원 수준으로 논의되던 보험사 설립 자본금이 금융위원회 시행령에서 20억원으로 상향됐고, 보험기간 1년 제한, 보험금상한 5000만원 등 각종 규제가 추가됐기 때문이다. 금융위의 보수적인 결정에 업계에서는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다. 진입장벽을 낮춰 신규 사업자를 유인하고 틈새 보험시장을 키우겠다는 법 개정 취지도 퇴색됐다.

금융위원회는 지난해 보험업법 개정에 따라 새롭게 도입된 ‘소액단기전문 보험회사’의 세부기준을 담은 보험업법 시행령을 발표하고, 3월 17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밝혔다.

먼저 소액단기보험 자본금 요건이 20억원으로 결정됐다. 이는 다양한 소비자 니즈에 맞는 틈새 보험상품 출시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지금까지 보험사를 설립하려면 질병보험 100억원, 종합보험 300억원 등의 자본금을 갖춰야 했다. 위험도와 무관하게 높은 자본금을 요구하는 바람에 최근 5년간 신규 설립된 보험사는 캐롯손해보험이 유일하다.

소액단기보험사의 보험금 상한액은 예금자 보호 상한액인 5000만원으로 설정했고, 보험사의 연간 총수입보험료는 500억원으로 제한했다. 보험기간은 1년으로 한정했으며, 취급 가능한 상품은 화재, 간병 등이 빠진 질병, 책임, 상해, 도난, 유리, 동물, 비용, 날씨보험에 국한됐다.

금융위원회는 “소액단기보험 활성화 취지와 함께 소비자 보호를 위한 인적·물적요건 구비, 재무건전성(RBC) 충족 가능성 등을 고려해 이 같이 결정했으며, 향후 신규사업자 진입이 촉진돼 소비자가 원하는 맞춤형 보험 활성화가 기대된다”고 말했다.

최근 5년간 일본 소액단기보험사의 주요 수치. 자료=일본 소액단기보험협회

설립자본금 일본 1억 vs 한국 20억

금융위 발표에 소액단기보험업 진출을 검토하던 업체들은 실망스럽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보험사 설립 자본금이 예상보다 크게 올라간데다 취급 상품도 제한적이라 사업성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보험업법 개정 취지는 진입장벽을 낮춰 다양한 사업자들을 끌어들이고, 혁신 경쟁을 통해 소비자의 보험선택권을 늘리자는 것인데 너무 규제 일변도로 접근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A기업 관계자는 “소액단기보험 진출을 검토 중인데 중소기업에게 자본금 20억원은 너무 부담되는 수준”이라며 “전산망 구축 등 다른 부대비용을 감안하면 사업 재검토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금융위는 이번 시행령을 만들며 일본 사례를 다수 벤치마킹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금융위 보도자료를 보면 “소액단기보험사가 활성화된 일본의 평균 자본금이 약 25억원인 점을 감안해 유사수준으로 자본금 20억원을 정했다”고 명시됐다.

그러나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 설명이다. 일본의 소액단기보험 최소자본금은 1000만엔(1억원) 에 불과하며, 낮은 진입장벽 덕분에 많은 사업자가 생겨나 기존에 없던 보험을 출시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평균자본금 25억원이 된 것이기 때문이다.

금융위가 소액단기보험금 상한액을 5000만원으로 정한 것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금융위 측은 “예금자보호 상한액에 맞췄다”고 설명했으나, 현재 생보·손보회사 등이 보호받고 있는 예금보험공사 기금에 소액단기보험사가 갑자기 ‘무임승차’로 편입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실제로 일본에서도 이런 문제로 갈등이 있었다. 예금자 보호를 위한 ‘세이프티넷’이란 장치에 신규 보험사의 가입 여부를 두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한 보험 전문가는 “금융위가 예금보험공사와 별도 협의도 거치지 않고,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인데, 소액단기보험사의 가입을 전제로 5000만원 상한을 정한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했다.

자본금 25억원, 보험금 상한액 5000만원으로 네거티브 규제를 하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에서는 정교한 소비자보호 장치들을 마련하고 있다.

일본의 소액단기보험사는 재보험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한다. 보험 가입 규모가 아무리 늘어도, 그에 비례해 재보험을 들기 때문에 리스크가 분산된다.

또한 공탁금제도를 통해 ‘연간수수보험료의 5% + 1000만엔’을 보유해야 한다.

아울러 보험사의 자산운용은 예금과 채권에 한정되고, 증권 등 위험자산은 투자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다. 보험기간 역시 생명보험 및 제3보험은 1년 이내, 손해보험은 2년 이내까지 허용한다.

반면 진입장벽은 최소화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험사 설립 자본금은 1000만엔에 불과하고,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로 운영돼 보험면허 취득없이도 사업이 가능하다.

이런 정책에 힘입어 일본에는 2019년 기준 103개 소액단기보험사가 활동하고 있으며, 연간 수입보험료가 1조1908억원에 달할 만큼 성장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은 반려견보험, 골프·레저보험, 여행자보험, 티켓보험, 고독사보험, 변호사보험 등 틈새 보험상품을 누리고 있다.

소비자보호를 핑계로 진입장벽을 크게 높여 실제 사업자들이 외면하게 만드는 국내 사정과는 비교되는 대목이다. 다음달 17일까지 남은 입법예고 기간에 이러한 의견들을 받아들이고, 소액단기보험 활성화라는 법 취지에 맞게 설립자본금 등을 지금보다 완화할 필요가 있다.

한 보험대학원 교수는 “소비자보호가 걱정된다면 재보험 의무 가입 등으로 보호장치를 만들면 된다. 설립자본금을 10억원 수준으로 낮춰 틈새보험시장을 활성화하고 소비자의 선택권을 늘려주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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